'배움의 행복/최진석의 장자철학' 카테고리의 글 목록 (3 Page)

배움의 행복/최진석의 장자철학 75

<최진석의 장자철학> 11-1강 득도한 사람의 성숙한 태도

" 우주의 진실 " 하백이 물어본다. "나는 천지를 크게보고 털끝을 작게 보면 되겠습니까?" 북해악 왈 "사물의 수량에는 끝이 없고 경게가 없다." (우주에는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것보다 큰 것이 있고, 아무리 작다고 해도 그것보다 작은 것이 있다.) 천지를 크게 보고 털끝을 작게 보는 것은 크고 작음을 인간이 정해버린 것이지 우주의 진실은 아니다. '시간은 멈춤이 없다.' '시간은 빠르다 느리다' 라고 말한다. 이런 말은 다 우주의 진실은 아니다. 모두 인간이 정한 것이다. 각기 사물이 처음과 끝은 되풀이되어 고정되지 않는다. 참된 지식을 터득한 사람은(득도한 사람)멀고 가까운 것을 다 본다. 거리가 멀다 가깝다도 인간이 정한 것이지 우주의 진실이 아니다. " 가치와 사실 " 득도한 사람은 사실 쪽에 ..

<최진석의 장자철학> 10-7강 일과 함량을 키우는 일은 섞여 있다.

"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지 않게 할 수 있을까? " 다른 사람을 어떻게 해야 되겠다? 는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좋다. 자기만 하는 것으로 확산이 되어야 한다. 위 물음은 어찌보면 굉장히 의미있는 질문처럼 보이지만 사람을 쓰레기를 안 버리게 바꾸는 것보다 자기가 쓰레기를 안 버리는 태도를 꾸준히 보여 주는 것 이것이 더 중요하다. 공자의 '德不孤 必有隣'(덕불고 필유린)에서 보듯이 당신이 수준이 갖추어져 있으면 외롭지 않다. 반드시 동조자가 생긴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가 항상 핵심이다. 사람들은 제도를 가지고 어떤 부분을 고치거사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고 한다. 그 이전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제도가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 사람이 제도를 바꾸는 것이 훨씬 쉽다. 제도 변화..

<최진석의 장자철학> 10-6강 가난해도 의기소침하지 않는다

' 화호경 ' 불교와 도교 사이에 세력 투쟁이 심할 때 나온 책으로 화는'교화'를 호는 '오랑캐'를 뜻한다. 중국에 불교가 들어올 당시 중국은 철학의 이론의 범위나 깊이가 두껍지 않았으나 불교는 완벽한 이론으로 들어옴. 당시 중국 철학은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이라고 결론을 내렸음 하지만 불교는 눈에 보이는 것은 가짜다.라는 이론.(환, 가유) 대립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중국 전통관념으로 불교를 해석하였고 두 대립 싸움이 송대까지 감. 송대에 가서 도교가 불교를 소화하고 '중현학'이라는 중국적 이론이 만들어졌다. 이때 도교가 불교를 소화했다고 소개한 책이 '화호경'이다. ' 화호경 중 수련의 항목 ' 첫 번째 수련은 분별하지 않는 덕을 수련하는 것 돌봄 받을 자격이 있는 이들을 돌보고 그럴 자격이 없는 이들..

<최진석의 장자철학> 10-5강 성인은 항상 무심하다. 도덕경 제49장

도덕경 49장을 보면'성인항무심 이백성심위심 선자선지 불선자역선지 덕선신자신지 불신자역신지 덕신' 성인은 항상 무심하다.(자기 마음이 없다, 정해진 마음이 없다): 세계를 보여지는 대로 본다. 백성의 마음을 자기마음으로 간주한다.: 백성은 세상 속에 있다.(이론속에 없다.) 세계를 보지 내 마음을 거기에 적용하지 않는다. 성인은 봐야 하는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대로 본다. 선한 사람에게 선하게 대하고선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선하게 대한다.: 윤리적, 정치적, 금전적 이득뿐만이 아니라 그런 것이 없다 하더라도 너의 덕이 선을 완수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선해지기 때문이다. (탁월해지기 때문이다.)나의 함럄이 커진다. 현실적 운영력이 커진다. 선과 악이라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신념..

<최진석의 장자철학> 10-4강 함량을 키우는 3가지 방법

덕의 문제, 함량의 문제 세상은 정확성의 크기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함량의 크기가 더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커야 한다. 내면이 커야 한다. 왜 아내의 반찬에 화가 나는가? 반찬의 의미만큼이 나의 크기이기 때문이다. 그 상황이 자기 전체이기 때문에 화가 난다. (ex. 앞차 끼어들기) 자기가 그 상황의 의미보다 자기 함량이 그만하거나 작기때문이다. 자기가 커 있어야 한다. 커있을수록 작은 단위의 일들이 쉽게 다뤄지고 아둥바둥하지 않는다. 작은 사람은 신경질이 많다. 우울함이 많다. 왜냐면 자기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기 뜻이 커버리면 상관하지 않는다. " 함량을 키우는 방법" 1. 뜻과 포부를 크게 가져야 한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인간으로 완성되기를 꿈꿔야 한다. 인간으로 완..

<최진석의 장자철학> 10-3 덕의 파괴자 '향원'

향원이란? 한계에 대면하는 능력이 준비되지 않고,한계를 대면할 때 직접 자신의 송곳으로 쓸 정도의 함량이 준비되지 않으면서 일정한 범위의 깨달음과 지식으로 신성을 듣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을논어에서는 향원이라고 한다. 글자대로 해석해 보면 '동네 원님'이라는 뜻이다. 일정한 범위(동네)안에서 공통 의식과 공통 경험을 기반으로신념과 이념을 가지고 거기서(동네)만 존경과 인정을 받는 사람이다.'향원은 덕의 파괴자' 공자는 향원을 '덕지적야' "덕의 파괴자다"라고 했다. 그럼 향원이 왜 덕의 파괴자일까?향원 중 큰 향원을 하백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가 얼마나 추한지를 모르는 상태의 하백을 향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향원들은 덕을 파괴한다. 향원은 함량을 파괴하는 것이다.너를 너이게 하는 그 근본적..

<최진석의 장자철학> 10-2강, 유동적 전체성

'추수'편 10-1강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하백이 말하기를 "당신의 끝이 안 보이는 크기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강이 바다를 보니 깜짝 놀랐습니다." " 내가 만약 당신의 문전에 오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도를 터득해서 아주 뛰어난 사람들한테 비웃음거리가 될 뻔했습니다." 북해약이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그 사람이 공간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여름 한철 사는 벌레는 가을을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시간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곡사(曲士)가 제한된 범위의 지식이나 인격의 사람 이 도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 사람은 관념 이념 교육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가두는 것 세 가지가 있다." 1. 어떤 공간에 살았느냐? 2. 어떤 시간에 살았느냐? 3...

<최진석의 장자철학> 10-1강 유방과 항우, 조조와 유비

장자를 읽은 때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우언편 부터 읽는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논변하는 사람보다 크기가 크고 굵다.(함량, 덕이 크다) " 유방과 항우, 조조와 유비 " 항우와 유방, 유방이 더 덕이 크다.유비와 조조는 조조가 더 덕이 크다. 항우는 귀족교육을 받은 사람이다.하지만 유방이 새로운 역사 진행을 정확히 이해하고 거기에 참여했기 때문이다.항우는 시대 진행과정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구태의연한 의식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조와 유비사이에서도 황건적이 이슈였다.유비는 황건적을 조정하거나 제거하려고만 했다. 조조는 황건적이 시대 흐름을 반영하는 시대의 코드다라고 읽고 품는다.군대도 조성하고, 납세도 하는 등 정상적으로 생활이 가능하도록 기반을 만들..

<최진석의 장자철학> 9-7강 돈과 자본, 부자와 자본가

시민, 민주주의의 등장 진취적으로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근대성을 비판한다.물론 근대성을 비판하면서 포스트 모던, 퓨처로 나아간다. 하지만 근대라는 것은 잘못된 사회가 아니라중세에서 진화된 매우 발전된 형태이다. 자본주의라는 것은 인간 진화에 있어서 매우 고급스러운 형태이며,(사회주의도 마찬가지이다.)왕정을 끝내고 이룩한 삶의 한 형식이다. 왕정이란 왕이 재화의 분배권과 소유권과 다 가지고 있었던 시대인데산업 혁명 이후 사회 계급 구조가 달라지게 된다. 왕이 재화를 분배하던 상징적 공간 '광장'이었다.왕의 권위가 떨어지고 역할이 축소되면서광장이 자기 물건을 파는 공간(시장)으로 변형된다. 거래를 하는 시장안에서 활동하던 사람을 시민(시장 사람)이라고 한다. 왕정시대에는 사적 소유가 안되었지만,왕권이 약화되자..

<최진석의 장자철학> 9-5강 책 속에 길이 없다. 9-6강 정해진 말의 노예

"책 속에 길이 없다." 독서를 하는 것은 보통 책 속에 길이 있다.라고 한다. 책 속에는 길이 없다. 책 속에는 책 쓴 사람의 길만 있다. 자기 길은 자기에게만 있다. 책을 읽은 것은 가장 기본적으로 책의 쓴 사람의 길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내 길을 찾는데 자극을 받기 위함이다.' 어떤 사람은 책을 책 쓴 사람의 추종의 방식으로 책을 읽을 수 있고 자신의 길을 찾기위해 책을 읽을 수 있다. 책 쓴 사람의 길을 쫓기 위한 것은 '찌꺼기'만 자기에게 남는 것이고, 책 쓴 사람의 길을 보면서 내 길을 찾는 것은 책이 찌꺼기로 남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생명수가 될 수 있다. " 정해진 말의 노예 " 우리나라의 똑똑한 젊은이와 이야기해 보면 전부 '전쟁은 피해야 하는 것'으로 이야기 한다. 그런데 다른 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