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의 장자철학> 10-1강 유방과 항우, 조조와 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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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의 장자철학> 10-1강 유방과 항우, 조조와 유비

notsun 2020. 1. 19. 23:03

 

장자를 읽은 때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우언편 부터 읽는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논변하는 사람보다 크기가 크고 굵다.(함량, 덕이 크다)

 

 

" 유방과 항우, 조조와 유비 "

 

항우와 유방, 유방이 더 덕이 크다.

유비와 조조는 조조가 더 덕이 크다.

 

항우는 귀족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하지만 유방이 새로운 역사 진행을 정확히 이해하고 거기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항우는 시대 진행과정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구태의연한 의식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유방 출처: 다음백과

 

 

조조와 유비사이에서도 황건적이 이슈였다.

유비는 황건적을 조정하거나 제거하려고만 했다.

 

조조는 황건적이 시대 흐름을 반영하는 시대의 코드다라고 읽고 품는다.

군대도 조성하고, 납세도 하는 등 정상적으로 생활이 가능하도록 기반을 만들어 줌.

 

유방과 조조는 나에게 있는 프레임을 세상에 적용하려는 사람이 아니었고,

세상을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있었다.

 

조조 출처: 다음백과

 

 

그 능력을 덕(德)이라고 한다.


 

" 질문과 대답 "

 

대답은 기능이지만

질문은 인격이다.

 

대답은 이미 있는 지식을 먹었다가 그대로 내 뱉는 통로에 불과하다.

 

질문은 자기 내면에 있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이 궁금증과 호기심은 자기에게만 있는 것이다. 자기의 내면의 힘이 발휘되는 것이고 이것을 덕, 함량이라고 한다.

 

왜 우리가 이야기를 중요하게 보느냐면

논변하는 사람보다 이야기하는 사람의 함량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야기하는 사람보다 시를 읊을 수 있는 사람이 함량이 더  크다.

시보다 소리를 다루는 사람이 함량이 더 크다.

소리보다 몸을 다루어 춤을 추는 사람이 함량이 더 크다.

이것이 함량의 차이이고, 시선의 높이 차이이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우원을 먼저 봤다.

 

함량의 크기는 어떻게 운용되는가?

 

" 하백과 약 "

 

추수편의 추수는 가을에 장마가 들어 물이 불어난 상황을 말한다.

온갖 시냇물이 황하를 향해 쏟아져 들어온다.

물이 불어나니 소인지 말인지 구분이 안된다.

하백(황하는 지배하는 신)이 내 지배권이 늘어남을 의기양양해 하며 물을 타고 동쪽으로 흘러감

끝이 안보이는 물이 보여 감탄을 하고 말을 함

하백이 본 물은 북해였다. 약이라는 신이 살고 있었다.

 

약을 보며 깜짝놀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도(道)를 백가지를 들으면, 자기와 같은 사람이 없다(나만한 사람은 없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신을 보며 깜짝 놀랬다라고 말함.

보통 도가 계열에서는 공자도 우습게 암. 우습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 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도 믿지 않는다.

 

자기 맘에 들지 않는 것을 믿는 것(받아들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 같아도 근본을 따져보면 내 맘에 들기 때문에 수용하는 것에 가깝다.

 

왜 우리가 수양을 하느냐?

마음을 무심의 경지로 진화시키는 것이 수양이다.

내 마음이 없는 단계를 나를 끌고 가는 것은

내 맘이 없어야 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세상에 있는것. 그리고 진실일 수 있는 것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하백도 도를 백가지 도를 들었지만 공자까지 우습게 알았지만 나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을 보니 내가 얼마나 작은 지를 알았다.

 

여기서 부터 '추수'편이 시작됨.

https://youtu.be/-5p7Fnbyl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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