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의 장자철학> 10-2강, 유동적 전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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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의 장자철학> 10-2강, 유동적 전체성

notsun 2020. 1. 30. 00:00

'추수'편

10-1강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하백이 말하기를 "당신의 끝이 안 보이는 크기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강이 바다를 보니 깜짝 놀랐습니다."

" 내가 만약 당신의 문전에 오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도를 터득해서 아주 뛰어난 사람들한테 비웃음거리가 될 뻔했습니다."

 

북해약이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그 사람이 공간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여름 한철 사는 벌레는 가을을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시간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곡사(曲士)가 제한된 범위의 지식이나 인격의 사람 이 도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 사람은 관념 이념 교육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가두는 것 세 가지가 있다."

1. 어떤 공간에 살았느냐?

2. 어떤 시간에 살았느냐?

3. 어떤 경험을 하고 교육을 받고 어떤 관념을 갖게 되느냐

이것으로 제안된다.

 

"그런데 너는 한계를 벗어났다."

 

그래서 대해를 보고 곧 네가 얼마나 추한지를 알아버렸다. 너는 이제 도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해약은 '미려'라는 구멍을 통해서 물이 조금씩 빠져나간다. 그러나 물이 준 적이 없다. 그리고 홍수가 나도 물이 많아지지도 않는다. 나는 그 정도다.

 

하지만 "나는 거대한 바다의 주인이어도 나는 거대하다 엄청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백과 북해약의 차이"

하백 출처:문화콘텐츠닷컴

 

하백은 자기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음.

북해약은 그런 것이 갖추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한 번도 없음.

 

두 차이는 그릇과 함량의 차이이다.

 

하지만 하백은 북해약을 보고 자기의 부족한 점을 스스로 알았다는 것이 위대하다.

 

하백의 크기나 대단함이 아니라 스스로 추하다고 알았다는 것(반성력)을 높이 삼.

북해약이 하백을 긍정하게 된 이유: 그래서 함께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함

 

사람들은 넓고 큰 것을 보고 거기에 견주어서 자기를 작다고 보는 반성력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 반성력이 핵심이다."

 

반성력이 있는 지성을 탄성력이 있는 지성이라고 함: 자기의 한계를 스스로 보는 능력이 있음

반성력이 없는 지성을 푹 퍼진 지성이라고 함: 있는 것만 가지고 주장

 

한계는 시대가 변하기 대문에 그 진리의 적용력이 달라지는 것이다.

한계는 원론적으로 수시로 제기된다. 제기되어야 한다.

 

한계를 보고 자기의 생각과 활동의 송곳으로 쓰는 것반성력이라고 한다.

 

 

"유동적 전체성"

 

수학 문제처럼 어느 정도의 지식에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고의 문제가 아니라

한계는 수시로 제기된다.

이 세계는 유동하기 때문 전체적이기 때문

 

지식이나 앎은 쉽게 고정되고 부분적이다.

그래서 유동적 전체성 안에서의 지식과 자의식이 깨어있다면 항상 한계와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계에 직면하는 태도를 반성력이라고 한다.

 

https://youtu.be/t1O8moRb6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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