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의 장자철학> 8-2강, 햇볕아래 졸고있는 고양이와 무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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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의 장자철학> 8-2강, 햇볕아래 졸고있는 고양이와 무소유

notsun 2019. 12. 2. 01:38

" 왜 우리는 개념을 써야 하는가?"

 

의사소통을 할 때 개념이 없으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꽃, 마이크, 고양이를 본 적이 있는가?

아버지를 가진 적이 있는가?,  점심을 먹은 적이 있는가?

 

우리는 이것들을 진짜로 보거나, 갖거나, 먹은 적이 없다.

단지 꽃이라고 불리는, 말해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일반명사와 고유명사"

 

개념은 '일반명사'로서 실제 이 세상에 없는 것이며, 생각이나 의식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은 '고유명사'다. 따라서 우리는 고유명사로 살아가야 한다.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분을 다른 사람과 똑같은 틀에 넣어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은 그분으로만 존재하도록 대하는 것이다.

 

그럼 왜 '일반명사'를 사용할까?

그것은 일상생활에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일반명사는 실제로 없는 것이지만,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효율성, 전승, 축적 등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봄이 왔다는 것은 실제로 없는 것이다.

그런 기간을 봄이라고 이름 붙인 것일 뿐이며, 우리는 이것을 합의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얼음이 녹는 사건이 있는 것이다.

 

'봄'이라는 말을 쓰면 '우리'의 봄은 있지만, 거기에 '내'가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언제나 할 수 있는 말. 나의 봄을 말해야 한다.

ex. "햇볕아래서 고양이가 졸고 있어요" 이것이 진짜 봄이다.

출처: piabay.com


 

 

"존재와 소유"

 

산이라는 개념으로 무등산이나 지리산을 보는 것은

무등산을 내 개념으로만 제압하려고 하는 것이다.

 

무등산을 무등산이게 하는 방법은 산이라는 개념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철학에서는 이것을 '존재'라고 한다.

 

내 개념으로 무등산으로 보거나, 해석하거나 제압하려고 하면,

이것은 내가 무등산을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가지려고 하는 것이다.

철학에서는 이것을 '소유'라고 한다.

출처:pixabay.com


"이 세계를 손으로 잡아 생각의 형태로 저장하는 것이 개념이다."

 

개념은 영어로 Concept이다.  동사는 conceive ('잡다'라는 의미가 있다.)

독일어도 비슷하다. 동. 서양이 개념이라는 것이 세계를 자기 뜻대로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 동일하다.

 

이 세계를 손으로 잡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은 포기하고,

손에 남는 것을 생각의 형태로 저장한 것이 개념이다.

 

개념은 내 뜻대로 정해서 관계하겠다는 것으로 소유가 되는 것이다.

철학에서 많이 나오는 '무소유'라는 것이 물질(재산)을 갖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사랑'이라는 개념이 '존재적 상태'가 아니고, '소유적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폭력이 되는 것은 각자의 소유적 상태에서의 만남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 세계 진실을 봐야하고, 진실과 접촉해야 한다."

 

개념은 이 세계의 진실을 보여줄 수 없다.

개념은 기본적 한계를 가지고 출발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 세계의 진실을 봐야하고 진실과 접촉해야 한다.

그래야 생존의 질과 양이 증가하는 것이다.

 

개념이 이 세계의 진실을 부분적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인간이 진실과 접촉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인간이 진실에 접촉하는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개념을 개념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아는 한

개념을 다루어 진실을 접촉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시"다.

출처:pixabay.com

 

 

https://youtu.be/gv2Q4trWw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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