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적 통찰"
장자 이야기에서 많이 인용되는 이야기 장자 부인이 죽어 상을 치르고 있어 장자의 친구 혜시가 문상을 갔습니다. 그런데 장자는 정작 질그릇을 두들기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혜시가 놀라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느냐?"물었습니다. 그러자 장자는 "나 역시 슬프다. 그래서 내가 그 근원. 근본을 잘 살펴보았더니 이렇더라. 원래 죽고 사는 일은 없다. 삶이 없고, 형체도 없고, 더 거슬러 올가가 보니 형체를 이루는 기도 없더라. "그런데 거기서 기가 생기고, 뭉치면서, 형체가 생기고, 생과 사가 생기고, 삶이 생겼다. 죽고 사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없다. 결국 부인이 죽은 것은 우주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 축하할 일이어서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라고 노래 부르는 이유를 설명했다고 합니다. |
- 장자가 '우주의 원래 모습'이라고 깨닫는 것은 인문적 통찰이 빚어낸 행위이다.
- 어떤 사건을 그 사건이 갖는 공통된 의견이나 태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 이런 '자기만의 독립적 해석'이 바로 인문적 통찰의 시작이다.
" 찰기시(察基始) "
- 찰기시(察基始): 그 본바탕을 자세히 살핀다는 의미
- '자세히 살피는 능력'은 극소수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 내 시선을 그 대상에게 가까이 가서 살피는 일이고 이것이 '관찰'이다.
→ 시선을 머물게 하는 관찰은 과학의 핵심이다.
→보지 않으면 관찰의 시작이 없다. 결국 과학적, 철학적, 인문적 인식이 불가능하다.
- 반대로 '함께 공유하는 있고, 원래 가지고 있던 인식의 틀은 그냥 '판단'이다.
→ 자기가 가진 인식의 틀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 거의 모든 시시비비, 선악을 판단으로 결정한다.
" 도덕과 정치의 분리 "
- 아편전쟁이후 동양의 굴욕은 과학과 철학이 없었기 때문
→ 중국과 일본은 적극적으로 과학과 철학을 배우는 시도를 했다.
→ 하지만 우리 사회는 과학적이고 철학적을 배우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 우리는 그저 감성적이고 도덕적인 접근만 하고 있다.
- '일본 정치사상가'라는 책에서 일본이 정치에서 성공한 이유는 도덕과 정치를 분리했기 때문이다.
- 도덕과 정치의 분리는 민주사회의 핵심이다.
- 우리의 정치적 의식이 전부 종교의식이다.
→ 우리는 과학과 철학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고,
→ 근대를 주체적으로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자세히 볼 줄 모른다.)
- 비빔밥의 레시피는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
→ 우리는 그것을 자세히 관찰한 적이 없다.
→ 관찰은 자기한테도 해당한다.: 우리는 자기 마음을 관찰한 적이 없다.
- "습관적으로 평가. 판단하는 것은 진보를 막는 일이다."
- 종교적 의식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정치의식
→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 그리고 그런 인식을 가진 자기를 바라볼 줄 모른다.
→ 결국 자세히 보고 생각하는 훈련이 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 장자의 찰기시 "
- 장자가 부인이 죽었는데도 노래하는 것은
→ 노래 하게한 장자의 수준 높은 인식, 인문적 인식을 봐야 한다.
→ 장자는 '찰기시'했기 때문이다.
- 장자와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 장자가 한 말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 그 근본, 근원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무소불규처럼 공부해야 한다.'
→ 놀고, 약속을 어기고, 열심히 하지 않는 것으로 도가사상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된다.
- 장자는 '무소불규'까지 자기를 단련했다.
→ 과학적 사고의 습관을 갖기 위해 훈련했고, 똑같은 방식을 반복하지 않았다.
" 예술적 경지. 의외성 "
- 장자 철학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 삶을 정치. 문학적 높이가 아닌 예술적 높이로 끌어올렸다.
- 예술 앞에서 훈련된 지성인이라면 규칙적 호흡과 맥박의 균형이 무너진다.(불균형, 불안정 상태)
→ 우리는 이것을 '감동'이라고 부른다.
→ 예술품 앞에서 감상자가 안정을 지키지 못하고 패배하는 과정이다.
- 감상자를 굴복시키고 압도하는 힘은 '의외성'에서 온다.
→ 예술작품의 첫 번째 조건이다.
- "더불어, 우리, 함께, 사람"은
→ 예술적이지 않다.
→ 정치적 감성은 가능하지만,
→ 인간을 예술적 높이로 끌어올리지는 못한다.
"우리는 나를 가두는 우리다"
- 장자는 의외성을 이야기하는 고유함을 가지고 있다.
→ 존엄, 자유, 독립에 집중한 고유함은 '개방적'이다.
- '찰기시'는 고유함으로 무장된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 '관념의 틀'에 갇혀있는 사람은 고유함을 포기한 사람에게는 새로운, 위대한 빛이 보이지 않는다.
- 장자는 그 사람 자체가 자기 자신의 존엄과 자발성에 매우 집중한 사람이다.
→ 모든 인류에게 빛이 되는 사람이다.
→ 반면 정해진 관념에 갇힌 사람은 굳어있고, 개방성이 없다.
- 우리를 생각하면 우리를 위하는 것 같다.
→ 하지만 우리에게 갇혀있을수록 우리를 위함이 아니고 더 굳게 만드는 것이다.
"단독자로 우뚝 섰을 때 진정한 '우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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