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의 장자철학> 11-3강 화광동진의 삶

배움의 행복/최진석의 장자철학

<최진석의 장자철학> 11-3강 화광동진의 삶

notsun 2020. 3. 18. 15:57

"원래 이래야 하는거 아니에요? 왜 저래요?"

 

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나의 수준을 생각지 않고 다른 사람의 수준만을 판단하려 한다.

 

추수편 - 하백과 북해약 이야기

 

위대한 인물(득도한 사람)은 남을 헤치지 않으나

은혜를 베푸는 것을 치켜 세우지도 않는다.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익을 추구하는 문지기나 노예들을 천하게 여기지 않는다.

 

재물을 다투지는 않지만

남에게 양보하는 것이 훌륭하다고 칭찬하지도 않는다.

 

일에는 남의 힘을 빌리지 않지만

남의 힘을 빌려 사는 사람을 비난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대단히 여기지도 않는다.

 

탐욕을 부리는 것을 천하다고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행동은 다른 사람과 다르지만 남들과 특별하게 다르다고 보지 않는다.

 

출처: pixabay,com

 

" 화광동진(和光同塵) "
: 자기가 가진 빛을 잘 단련해서, 속세와 같아진다. 섞인다.

 

▶ 자기의 특별함으로 세상을 압도하려는 사람을 믿지마라.



"광이불요(光而不耀)"
: 빛이 나지만, 눈부실 정도로 하지 않는다.

 

▶ 성인 정도에서 나오는 행위이다. 최상급의 인간이 하는 행동이다.

 

 

 

 

" 하지만 우리처럼 속인들은 빛이 나도록 노력을 해야할 사람들이다."

 

그 빛이 눈부시지 않을 정도로 되어야 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일반화에 섞여버릴려고 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도연명'이라는 중국 시인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도연명은 최고 높이까지 이른 다음 고향으로 돌아간 것인데

 

이를 보고 속인도 모든 것을 끊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수양하고 하고 깨달음을 얻어 내린 결론인데

 

우리는 그 자체를 따라하기 쉽다.

 

고전이나 성인을 배울 때 특별함을 추구하는 것을 멈추거나

탁월한 성숙에 이르는 야망을 접거나

위대해 지려는 포부를 접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화광동진을 지금 당장 실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내가 그 단계까지 성장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도연명, 출처: 다음백과


 

"고단함을 겪어야 자연스럽게 '화광동진'에 이를 수 있다."

 

요가의 목을 젖히는 동작만 하다가 다칠 수 있다.

요가는 발바닥에서 부터 신경 근육이 올라와서 목을 젖히는 것과 같다.

발바닥부터 출발하는 동작이 없이 목만 움직이면 다친다.

 

밑에서 부터 축적되고 수련된 과정과 탁월함과 위대해지려은 집착과 포부과 쌓여야

화광동진을 이룰 수 있다.

 

성인의 이야기를 배울 때 잘못하면 결론만 보고

그 바닥에서 부터 그 결론에 이르기 까지 거쳐왔던 고단함을 겪지 않으려 한다.

 

출처: pixabay.com

 

https://youtu.be/roiLSC1nx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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