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의 장자철학> 13-4강 쌓고 쌓고 또 쌓으면 1

배움의 행복/최진석의 장자철학

<최진석의 장자철학> 13-4강 쌓고 쌓고 또 쌓으면 1

notsun 2020. 6. 3. 22:23

자기 크기를 수천리 물고기로 키우느냐 마느냐가

인간이 할 일이다.

 

그 할 일이 완성되면 그것이 아무 의미없이

사라지는 일은 없다.

 

이것은 荀子(순자) 勸學篇(권학편)과 같다

 

積土成山(적토성산),風雨興焉(풍우흥언)

흙을 쌓아 산을 이루면, 바람과 비는 거기서 일어나고

 

積水成淵(적수성연),蛟龍生焉(교룡생언)

물을 모아 연못을 이루면 물고기는 거기서 생겨나고

 

積善成德(적선성덕),神明自得(신명자득)

聖心備焉(성심비언).

 

 

 

 

탁월함을 이루려고 노력하여 덕을 완성해 놓으면

신령스런 통찰력을 얻고, 성인의 마음이 거기에 갖추어진다.

 

인간이 할 일은 적토성산, 적수성연, 적선성덕 뿐이다.

 

우리가 할 일은 적토성산할 일이다.

다른거 신경쓰지 말고

 

그런데 적토성산에 쓸 노력을

바람과 비는 언제 생길까에 걱정 고민하는 것에 쓰는 것은

적토성산도 제대로 제대로 되지 않는다.

 

바람과 비는 선물과 같은 것이다.

반드시 오는 선물

 

두꺼운 공을 쌓으면 삼천리 높이가 치면

튀어 올라 대붕이 되는 것이다.

 

쌓고 쌓고 쌓으면 그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자기 존재가 다른 존재로 이행한다.

 

 

 

 

질적 전환이 일어난다.

 

일상에서 허덕거리는 존재가

일상을 지배하는 존재가 된다.

 

언어를 사용하던 존재가 언어를 지배하는 존재가 된다.

 

이렇게 도가 철학은 현실을 초월하는 것을 지양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갈고 다듬어서 초월적 상태로 인도하겠다는 것이다.

 

 

 

 

그 두께를 가진 존재는 어떠한가?

 

참새가 봉황의 마음을 알겠는가?

 

매미와 비둘기와 봉화을 비웃으면서 말하기를

나는 힘껏 올라봐야 나뭇 가지에 이르거나

거기에 이르지도 못해 땅에 떨어진다.

 

너는 뭐하러 구만리나 올라 그 고생을 하냐?

 

하지만 장자가 바로 설명하지 않는다.

교외 나갈려면 세끼 밥만 준비해도 다 못 먹고 돌아온다.

 

천리길을 가려면 곡식을 석달동안 모아야 한다.

 

붕이 될 정도의 고뇌 축정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부터 인간의 존재가 달라진다.

 

누군가는 글을 쓰면 동네 몇 명이서 돌려보고 끝나지만

누군가는 글을 쓰면 수천년 역사에 남는다.

 

 

 

 

누가 더 두껍냐? 누가 더 쌓았느냐?

여기서부터 싸움이 치열해 진다.

 

이 치열함을 감당하지 못하면

꿈은 세계 최고이지만, 현실은 동네 최고일 뿐이다.

 

도가는 힘들지 않고 편안한 것이 아니고

작은 물고기가 수천리나 되는 물고기가 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수천리나 되는 물고기와 그 물고기가 대붕이

되는 것만 생각하지

 

작은 물고기가 수천리의 물고기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보지 못한다.

 

나무의 옹이가 빠진 자리에 물을 부으면

술자는 띄우지 못하고

나뭇잎 하나만 띄울 자리가 된다.

자기 하나 하나의 정치적 태도, 문장 들은

자기 두께만큼만 (옹이에 찬 물 한잔 정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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