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남한산성 행궁, 수어장대

배움의 행복

<답사>남한산성 행궁, 수어장대

notsun 2019. 11. 25. 01:17

성남에는 볼 일이 있어 자주 다녀간 곳인데,

세계유산으로, 영화로 다시 한번 주목받게 된

꼭 가보고 싶었던 남한산성을 드디어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시간이 많지 않아 남한산성 행궁과 수어장대만 보고 왔습니다.

 

모두 최근에 재건이 된 것들이라 오랜 역사의 숨결을 느끼기에는 좀 아쉬웠지만

복원을 정말 잘 했다는 생각과

행궁의 건물 배치가 너무 매력적이었고

가을과 너무 잘 어울리는 곳이어서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시간을 꼭 내서

남한산성 전체를 한번 걸어보려 합니다.

 

그럼 남한산성에 대해 공부해 보겠습니다.

 

출처: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남한산성"은

 

기원은 통일신라 문무왕 때 만든 '주장성'의 터를 활용한 것입니다.

조선 인조4년 대대적으로 구축하였습니다. 

 

평균 해발 480m 험준한 산세를 이용한 것으로,

둘레가 12km에 이르며 분지형태이기 때문에

조선 왕실의 보장처(전쟁 시 임금이 대피하는 곳)로 최적이었습니다.

출처: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당시 조선, 일본, 중국 사이에 상당한 교류가 이루어졌고

유럽의 영향을 받은 화포의 도입이 이루어져

성곽을 쌓는 축성술 면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포 : 조선시대 사용하던 유동식 화포


주차장

저는 평일에 다녀와서주차장 비용으로 3,000원 지불했습니다. 선불입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행궁으로 향했습니다.

 

매표소로 가기 전 커다란 종이 보입니다.

 

남한산성 종각의 천흥사 동종

고려시대 때 주조된 천안 천흥사 종으로 남한산성에 언제 옮겨졌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산성 내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일제시대 이후 박물관으로 옮겨졌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종은 소장된 종을 재현한 것으로 3배 정도 크다고 합니다.

 

매표소

성인은 2,000원 입니다. 참고로 경기도민은 무료라고 합니다.


이제 '남한산성 행궁'으로 가 보시겠습니다.

 

행궁은 임금이 궁궐을 떠나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말합니다.

남한산성 행궁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인조 4년 건립되었습니다.

병자호란 때 인조는 47일간 항전하였습니다.

 

이후 여러 왕들이 여주, 이천 등의 능행길에 머물러 사용했다고 합니다.

1909년까지 그 형태가 잘 남아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훼손했습니다.

1999년 발굴 조사를 시작으로 재축하여 지금의 행궁이 되었습니다.


 

" 한남루"

 

행궁 외곽 담장의 정문에 해당하는 '외삼문'의 누각입니다.

정조 22년에 광주 유수 홍억이 행궁 입구에 대문으로 세운 것입니다.

붕괴되었던 것을 프랑스 영사의 사진을 바탕으로 2011년 복원한 것입니다.

 

출처: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한남루

기단부의 초석이 상당히 높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너무 높다 싶을 정도이지만

한남루를 아래에서 진입할 때 전경을 보시면

그 비례가 왜 이런지 이해가 갑니다.

 

사또 복장을 하고 계시는 분이 표를 받으십니다.

사진도 같이 찍으시면 좋을 듯합니다.

 


신기전 기화차

한남루를 지나면 내부 안마당 같은 곳이 있습니다.

'연지'도 있고 당시 사용했던 몇 점의 무기들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외삼문"

 

외삼문
외삼문 북행각


"전시실"

외삼문으로 들어오면 북행각을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남한산성에 대한 정보와 사진, 모형 등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전시실 출입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남한산성 모형
행궁 모형


"통일신라 건물지"

 

외삼문에서 외행전으로 이동하기 위해 중문을 거치면

우측에 통일신라 건물지가 있습니다.

갑자기 웬 통일신라? 하고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사실 당황스러웠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남한산성 자리는 신라의 '주장성'이 있던 자리입니다.

통일 신라시대 당과 투쟁하던 시기 문무왕이

한산(한강 이남 광주. 하남에 해당)에 주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주장성은 신라가 쌓은 성 중 가장 큰 규모였습니다.

 

인조 때 남한산성을 지으면서

"옛 터를 따라 남한산성을 다시 쌓게 하였다"는 남한지 기록내용이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주장성의 규모가 나오는데,

지금의 남한산성과 같은 규모라고 하니

인조 때에 축조한 남한산성은 원성과 거의 같은 규모임을

알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 건물지 입구
유적 전시실

이 유적은 당시 전쟁 관련 물품을 보관하는 군수창고로 추정됩니다.

 

" 외행전 "

 

외행전은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내형전보다 작고 낮은 곳에 위치합니다.

병자호란 당시 왕이 병사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좌승당이 지어지기 이전에는 광주부 유수의 집무실로 사용되었으며

현재 이 건물은 2010년 중건되었습니다.

 

중문에서 바라본 외행전
외행전 후면

경사지를 잘 활용하여 건물들이 배치가 되어있습니다.

각 공간마다 위계가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어

결코 지루하지 않고 딱딱하지 않은 공간 구성입니다.

 

 

" 일장각 "

 

이 건물은 행궁 하궐에 있던 광주부 유수가 사용하던 건물입니다.

순조 29년 광주부 유수 이지연이 세운 건물이며

1900년대 일장각의 모습은 확인되었지만

이후 철거되었고,

발굴조사 과정에서 건물지의 일부를 확인하여

2010년 중건되었습니다.

일장각
일장각 내부

 

" 내행전 "

 

상궐인 내행전은 왕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인조 2년 처음 지어졌습니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규모입니다.

가운데는 대청으로, 좌우는 온돌방과 마루방입니다.

 

내행전의 공포는 이익공 형식(새의 날개처럼 생긴 부재를 두 개 겹쳐 쌓은 양식)

과 팔작지붕으로 가장 격식이 높습니다.

기단은 돌을 3단으로 쌓아 경사를 극복하면서도 위엄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내행전을 2002년 중건되었습니다.

 

외부에서부터 공간의 연결은 내부까지 계속됩니다.

내행전에서 후원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다이내믹한 담장, 나무 그리고 그 배경에 장송의 절경이 펼쳐집니다.

내행전 내부 모습

가운데 대청과 양편으로 온돌과 마루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좌승당 "

 

상궐 내행전 북쪽 담장 밖에 위치한 좌승당은

광주부 유수의 집무용 건물로 순조 17년 건립되었습니다.

'좌승'이란 앉아서도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발굴 조사 결과 건물의 기초 부분이 잘 남아 있었고

정면 6칸, 측면 3칸 팔작지붕으로 복원이 완료된 상태입니다.

 

 

좌승당 정면 모습

석축이 배경이 되어 건물이 앉아 있고

공간과 공간 사이에는 계속되는 프레임이 설치되어 있어

사람을 이끌고 있습니다.

 

" 이위정 "

 

순조 17년 광주부 유수부 심상규가 활을 쏘기 위해 후원에 세운 정자입니다.

기분은 심상규가 짓고 글씨는 추사 김정희가 썼습니다.

'이위'란 활로서 천하를 위압할 만하지만,

활과 화살이 아닌 인의와 충용으로서도

능히 천하를 위압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위정은 2010년 중건되었습니다.

담장 밖의 건물은 조선 왕의 신위를 모시는 '정전'입니다.

전통 사찰이나 전통 마을, 서원 등의 배치 방식과 공간 구성이 이곳에 다 있는 듯합니다.

 

" 좌 전 "

 

남한산성 행궁은 임금이 머무는 곳으로

행궁과 더불어 종묘와 사직을 모실 수 있도록 좌전과 우실을 만들었습니다.

숙종 37년에 종묘를 봉안하기 위해 좌전이 건립되었습니다.

좌전은 근래에 발굴조사와 고증을 통하여 복원을 완료하였습니다.

 

좌전을 가기 위해서는 한남루를 다시 나와서 그 옆 돌담길을 따라 올라가야 합니다.

 

담장과 고목 그리고 장송이 가는 길을 따라 늘어서 있습니다.

행궁이라고 생각되지 않고 어느 마을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담장 너머로 가끔씩 보이는 지붕과 내부는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경사지에 순응해서 배치가 되어 있고, 거스르지 않은 것이 특징입니다.

좌전은 명녕전과 정전 두 건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부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대신 이 길을 계속 따라가면 수어장대로 올라가는 길과 연결되어 담장 너머로 모습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행궁도 좋지만 주변 산자락의 장송은 정말 장관입니다.

 

" 수어장대 "

 

수어장대는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은 누각입니다.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는데 이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입니다.

인조 때 단층으로 '서장대'라고 불리던 것을

영조 때 유수 이기진이 왕명을 받아 이층으로 다시 짓고

'수어장대'라는 편액을 달았습니다.

푸른색 화살표는 남한산성 행궁, 붉은색은 수어장대입니다.

수어장대로 올라가는 탐방로
청량당

수어장대로 오르기 전에 청량당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사당은 남한산성을 쌓을 때 동남쪽 축성의 책임자였던

이 회 장군과 그의 부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이 회는 공사비를 횡령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하고,

부인도 한강에 몸을 던져 따라 죽었다고 합니다.

후에 누명이 벗겨지고 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지었습니다.

현재 건물은 6.25 때 소실되었다가 다시 지은 것입니다.

 

수어장대에서 바라본 잠실 롯데타워
매바위
맨 오른쪽 나무가 박정희 대통령 식수입니다.

 

2000년 초반에 중건되었다고 해서 현대적 냄새가 많이 나는 곳으로 생각하고

행궁을 찾았지만 그 지형과  기존 건축물의 배치를 잘 복원했다고 생각합니다.

반나절 행궁에서 수어장대까지 뜻깊은 시간이었고

나중엔 꼭 하루 제대로 시간내어 남한산성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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