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전쟁사_제1차 세계대전-2

배움의 행복

세계사. 전쟁사_제1차 세계대전-2

notsun 2020. 3. 23. 15:09

이 번 포스팅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겪게되는 참혹한 역사

 

"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 에 대해 공부하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관련 내용 및 첨부된 이미지는 아래 유튜브 영상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현대사에 있어 최악의 전쟁

약 30여개국의 참전으로

전사자만 약 1,000만명

 

참호전을 반복하며

장기화된 전투

 

전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보급의

역할이 대두된 전쟁

참고로 보급력의 최강은 '칭기즈칸 군대'였다.


"장기전 돌입으로 달라진 전쟁 양상"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반전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전쟁혐오증과 반전운동의 결과로

러시아혁명, 사회민주주의 확산되게 됩니다.

 

하지만 베트남전 이후 반전운동과는 달랐습니다.

당시 유럽에서의 전쟁 개념은

온 국민이 싸우는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희생자를 낳고

도시가 파괴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청년 25%가 사망하고(약150만명)

프랑스 남자 1,200만명이 직.간접 피해를 받습니다.

나중에는 소년들동 징집대상이 됩니다.

 

당시 반전운동은

"전쟁을 제대로 운영하자" 였습니다.

 

오히려 국가적으로 결집하고, 제대로 된

전략.전술을 요구함으로써

제대로 준비하자라는 쪽으로 기웁니다.


"가장 길고 잔혹했던 베르됭 전투"

 

 

프랑스군 약 37만 7천명 사상

독일군 약 35만 7천명 사상

 

극악한 참호전의 끝판왕

프랑스군의 전략적. 상징적 요충지 베르됭

'살아남은 자보다 죽은자가 더 많은 곳'으로

불렸습니다.

 

당시 전투 최고의 전략 2가지

1> 공격이 최고다

2>한치의 땅도 빼아앗길 수 없다.

 

전쟁에 있어 가장 희생이 큰 이유는

유연성의 상실인데

그런 소모전이 가장 컸던 전투가 베르됭 전투입니다.

 

양측이 쏟아 부은 포탄

총 4,000여 만발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지휘관은 페탱 사령관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전략 전술이 사라지게 됩니다.

결국 양국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전략해 버립니다.

 


"프랑스의 전쟁 대비책 마지노선의 등장"

 

 

1차 대전의 참혹한 참호전을 겪지 않기 위해

거대한 요새를 만들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2차 대전 때 하기로 하겠습니다.

 

마지노선은

'최후 방어선',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라는 의미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프 국방장관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완공 구간이 약 360km에 달합니다.

 

천문학적 공사비용 약 160억 프랑

상하돌출. 회전이 가능한 대 전차 방어시설

주거지역. 보급창고. 방어선 연결

지하철 도로망까지 갖추었다고 합니다.

 

막대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투자

전쟁의 교훈이 반전만 나타나는 것이아니라

국방에 대한 대비까지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 무기의 발달이 변모시킨 전쟁 양상 " 

 

당시는 급격한 기술의 발전을

전략.전술이 못 따라갈 만큼이었습니다.

 

바로 '탱크, 잠수함, 비행기' 입니다.

 

악마의 3형제(참호, 철조망, 기관총)을 무찌른

신무기가 등장합니다.

 

바로 탱크 입니다.

 

최초 개발국은 영국입니다.

여성형(기관총 탑재)과 남성형(대포 탑재)으로 만든

마크 원(MK1)입니다.

 

총알을 튕켜내는 MK1

독일군은 충격과 공포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성능은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초기 영국군 탱크 속도는 4~5KM/H에 불과했습니다.

농기구 트랙터를 개조한 것이었지요

 

MK1~MK7중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MK4 였습니다.

여기에 독일군의 맞대응은 A7V전투 전차

하지만 역시 부실한 성능이었습니다.

 

 

의외로 전차 강대국은 프랑스였습니다.

포탑이 회전하는 르노 FT-17입니다.

이후 모든 전차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세계최강 영국해군에게 밀린 독일의 선택

'잠수함'입니다.

독일은 지정학적 위치상 제대로된

해군 군함을 갖기 어려웠습니다.

 

악명높은 U보트(바다 밑의 배)가 1차 세계대전에서도

활약을 했습니다.

영국으로 가는 물자를 차단하기 시작합니다.

 

군함 뿐만 아니라 민간 상선까지 가리지 않고

공격했는데 영국 해군의 해상 봉쇄령에 맞선

독일 해군의 승부수였습니다.

 

 

당시 잠수함은 수상 운항을 하다가

필요할 때 잠수를 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연합군도 잠수함이 있었지만 어뢰 장전을 하려면

모항으로 귀환을 해야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잠수 중 어뢰 재장전이 가능했습니다.

 

다음은 공중전입니다.

 

독일군의 비행선 '체펠린'은

수소가스를 채운 비행선으로

성능을 별로 였습니다.

 

 

이후 전쟁은 폭격기로 대체되면서

공중전과 지상전에 있어서

전차와 전투기의 협공으로 양상이 바뀌게 됩니다.


" 미국의 참전 "

 

미국의 '고립주의'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미군은 유럽의 많은 나라의 이민자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당지 넘쳐나는 자원부국으로

참전보다는 개척사업이 먼저였습니다.

남북 전쟁 후 미국은 급변화.급성장 중이었습니다.

 

또한 미군 내의 연합국과 동맹국출신 이민자들간의

싸움이 자국 내에서 일어나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당시 미국의 숙제인

'미국인'이라는 국민 의식 확산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유럽문제에 간섭하면 국민 분열이

자명했기 때문입니다.

 

산업중심지만 제외하고 모든 주에서

전쟁을 반대했습니다.

당시 윌슨대통령은 참전 반대 공약으로

재선에 성공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윌슨은 국제 정세와 향후 미국의 이익을

고려하여 전쟁에 참가할 명분이 필요했는데

마침 독일의 잠수함이 미국의 배(루시타니아 호)가

침몰됩니다.

 

 

또한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독일이 멕시코에게 미국 공격 요청을 알게 됩니다.

 

결국 세계 패권의 노림수 였던 참전으로

윌슨은 "모든 전쟁을 내는 전쟁의 시작"이며

"미국이 세계의 주도국이 되어야 한다"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미국의 참전이 선언됩니다. 1917. 4. 2

이로써 막강한 물량의 미국 참전은

1차 세계대전의 분수령이 됩니다.

 

그리고 세계 평화 주도국의 입장에서

국제연합 창설 계획을 발표합니다.


 

 

 

 

 

"독일의 항복"

 

켄베이어벨트 시스템 도입으로 물량전

지원이 강화됩니다.

미국의 포드이즘이 프랑스에도 도입되어

포탄 생산량이 10배 이상 증가합니다.

 

따라서 전세는 기울게 되었고

장기전으로 군인들의 반기와 시민혁명으로

독일제국이 붕괴됩니다.

 

 

1918년  11월  11일

독일은 종전협정에 서명하며 항복하고

패전의 책임을 묻는 '베르사유조약'이 체결됩니다.

독일 영토 일부, 식민지 포기, 군사력 제한 그리고

엄청난 전쟁 배상금까지 치러야 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남긴 흔적들"

 

1. 트렌치 코트

영국군 장교들의 우비에서 유래

'어깨 견장'과 가슴의 '건 플랩'이 상징

 

 

2. 생리대

부상자 치료로 썼던 지혈용 목화솜의 부족

목화솜 대신 펄프 제질의 흡수지 '셀코튼'을

킴벌리사에서 개발한 그 지혈용을

생리대 대용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제품화

 

 

3. 초콜릿

원래 초콜릿은 귀족식품으로 액상화였음

미국 허쉬사가 고체화해서 미군 병사에게 나눠줌

 

 

4. 성형수술

참혹했던 전쟁. 특히 캐니스터 탄(산탄)으로

얼굴 부상자 많아짐

보형물을 집어넣어주는 수술이 이후 성형수술로 발달

 

 

5. 방독면

문명의 발달을 부르는 '전쟁의 이면'입니다.

독가스가 처음 사용된 1차 대전

독일군에서 활성탄 필터를 발명

 

 

 

6. 필라테스

재활을 위한 특별한 운동법 발견

 

 

7. 여권의 신장

공장에 포드방식의 컨베이어벨트 라인 도입

여자들도 공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되고

당시 구호가

남자는 전장, 여자는 공장으로 였다고 합니다.

경제력이 생기면서 권력도 생기고

그리고 1차 대전 말기 여성의 정치적 참정권

(러시아.독일.폴란드.캐나다)도 생기게 됩니다.

 


" 혹독한 전쟁의 대가 "

 

또 한사람의 전범

'힌덴부르크'

 

퇴역장군이었으나

조건이 잘 맞아서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독일국민은 패전국으로서의 자존심을

힌덴부르크의 영웅화로 바뀌게 됩니다.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히틀러'를 수상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권력을 남용하여 독재정치를 펼쳤고

히틀러에게 권력을 줌으로써

나치정권 탄생에 기여한 죄인으로 낙인찍힘

 

전쟁영웅이었던 힌덴부르크의 이름을 붙인

거리. 건물. 군함. 비행선 등도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모두 지워짐


"1차 세계대전이 남긴 교훈"

 

' 변화와 혁신'을 바라보는 자세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1차 세계대전의 양상을 보고

이후 전쟁(2차 대전)을 준비한 사람은 극소수였다.

예로 탱크가 기동전을 할 수 있을거라 예측하지 못했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피를 제물로 삼는다.

전쟁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과학기술

리더의 안목과 책임이 중요

 

자료출처 https://youtu.be/yUG9Bf1wPM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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