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서정주 시인의 집_사당. 남현동. 관악산 가볼만한 곳

배움의 행복

<답사>서정주 시인의 집_사당. 남현동. 관악산 가볼만한 곳

notsun 2019. 11. 18. 01:51

 

 

'국화 옆에서'라는 시 한번쯤은 들어보셨죠?

바로 이 국보급 시를 지으신 분이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인 '서정주'입니다.

이분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머무셨던 생가가 바로 남현동 관악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예술인 마을'로 불리는데, 예전에 많은 예술인들이 이 곳으로 이주해 와 살았다고 합니다.

 

이미지 출처: tbs
이미지 출처: tbs

미당 서정주시인의 집은 사당역에서 관악산 등산로를 오르기 전에 잠시 들릴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단독주택단지였지만 지금은 빌라들이 많이 들어있는 곳입니다.

 

이미지 출처: 다음지도

남현동 사당초등학교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관악산 등산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등산로 입구 전 사당초등학교 방향에 있습니다.

혹시 이 방향의 등산로를 이용하시는 분들은 잠시 들러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은행나무와 멋진 소나무 가리어져 있어 정취가 더욱 돋보입니다.

이곳은 현재 서울시에서 '서울 미래유산'으로 보존 관리하고 있습니다.

월요일과 명절 때만 빼고 개방되어 있습니다. 

아침 10시부터 개방이라고 되어 있지만 9시부터 열려 있습니다.

 

지금은 행정구역이 관악구 남현동이지만, 예전에는 영등포구에 속했습니다.

문패를 대문에 세우고 처음 이사 가셨을 때 시인의 설레는 마음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마당에 들어서면 작고 소박한 2층 집이 눈에 들어옵니다.

햇살이 잘 들고 상쾌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곳에서 이 시인은 많은 사색을 하셨을 겁니다.

사당초등학교가 바로 인접해 있어 아이들의 합창소리를 들으며 함께 따라 부르셨을 겁니다.

사당초등학교 교가도 서정주 시인이 실제 작사를 하셨습니다.

 

출처: 사당초등학교

작곡가도 김동진 님으로 되어 있는데, <목련화>, <수선화> 등을 작곡하신 그분인 듯합니다.

 

 

이 교가를 부르는 사당초등학교 아이들은 자랑스러워 할 것입니다.

 

1970년 이 곳에 집을 지어 공덕동에서 이사오셔서 2010년 돌아가실 때까지 사셨던 집을 전시관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2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규모는 작은 주택정도의 사이즈 입니다.

서정주 시인이 직접 실측해서 만든 평면도라고 합니다.

수첩에는 시멘트 몇포대, 벽돌 몇장 꼼꼼히 적어 놓아 건축비를 최대한 아끼려는 그의 알뜰함이 녹아있습니다.


"노 시인 부부의 미소"

두 분은 63년을 해로하셨다고 합니다.

2010년 10월 10일 부인 방옥숙여사께서 작고하시고 딱 두달 뒤인 눈내리는 성탄절 시인도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시인 집에 방문객이 오면 대접할 때 부인을 부르실 때 종을 흔들거나 이 뿔나팔을 부셨다고 합니다.

스위스에서 구입한 나팔로서 삶에서도 흥이 묻어나는 모습입니다.

 

"늙은 사내의 시"

서 정 수

내 나이 80이 넘었으니

시를 못쓰는 날은

늙은 내 할망구의 손톱이나 깍어주자.

발톱도 또 이쁘게 깎어주자.

훈장 여편네로 고생살이 하기에

거칠대로 거칠어진 아내 손발의

손톱 발톱이나 이뿌게 깎어주자.

내 시에 나오는 초승달같이

아내 손톱밑에 아직도 떠오르는

초사흘 달 바래보며 마음 달래자.

마음 달래자. 마음 달래자

 

노부부의 사랑이 이것으로 표현하지 못하면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랜 세월을 같이한 부인을 위한 애처러운 마음과 흘러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합니다.

마음 달래자 마음 달래자 마을 달래자......

2층 서재
1층 안방

미당은 평소에는 이층 서재에서 생활했으나

거동이 불편해진 뒤에는 여기 1층 안방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2000년 10월 10일 부인 방옥숙 여사가 임종하고

난 뒤 곡기를 끊고 혼자 지내셨습니다.

시인은 기력이 급격히 떨어져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했고

30년간 정들었던 집을 다시 돌아오지 못하셨습니다.


"멋쟁이 시인"

평소에 쓰시던 모자
지팡이

미당은 패션 감각도 뛰어나셨다고 합니다.

나비 넥타이 등 다양한 넥타이와 모자, 지팡이를 통해 세련된 기품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대체로 간편한 한복차람으로 지내셨다고 합니다.


"노력하는 시인"

미당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시인이었습니다.

70이 넘어 러시아어를 독학하고,

기억력 감퇴를 막기 위해 매일 아침

세계의 명산 1,625개를 외웠다고 합니다.


" 떠돌이 시인 "

 

1977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세계여행을 했다고 합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오대양 육대주를 두루 여행한 그는 특별한 시인이었습니다.


"시인의 시 속에 그의 삶이 녹아 있듯이,

 

그의 삶 속에 시가 있음을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