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의 장자철학> 7-2강, 미학적 수준에 이른 장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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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의 장자철학> 7-2강, 미학적 수준에 이른 장자철학

notsun 2019. 11. 14. 01:55

지난 강연 복습해 보겠습니다.

장자는 맹자와 같은 시대 사람으로, 장자 철학의 대표적인 책은 3종류가 있습니다.

이중 곽상의 '장자주'는 33개의 채터로 장자가 쓴 것과 후학이나 제자가 쓴 챕터로 나뉩니다. 

 

문명세계는 모두 질문에 의해 발전되었고, 대답에서 나온 것을 없습니다.

질문을 자기의 고유함이 드러나는 것이고, 자신의 인격 문제입니다.

 

이론의 생성, 문명의 출현, 지식의 생성은 모두 인격적으로 준비된 사람에게서 나온 것들입니다.

장자의 철학도 이런 부류인데 그래서 인격적인 사람 바로 장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장자 철학을 미학적 경지에 올랐다는 내용입니다. 왜 그런가에 대해 공부해보겠습니다.


이미지출처: pixabay.com

사마천의 사기 '노자한비열전'에서 장자는 어떻게 언급되어 있는가?

 

無所不闚(무소불규)

 

- 길게 언급되어 있지는 않고 두 문단(275자)으로 장자 철학과 장자라는 사람에 대해 언급되어 있음.

- 무소불규(학문을 함에 있어 장자는 들여다보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장자를 평가하고 있다.

→ 그만큼 장자의 철학은 폭이 넓다.

- 표현기법은 우언(寓言)으로 쓰여있다.: 이야기처럼 쓰여있다.

- '공자는 반대하고 노자는 찬성했다.'

→ 장자 철학의 요점은 '노자'로 귀결된다.(기본으로 한다.)

- 유가와 묵가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었다.


 

 

말이 너무 화려하고 커서 통지자에게 사용(등용)되지 않았다.

 

- 통치자에게 등용되지 않는 것을 재야(在野)라고 한다.

- 재야라는 단어는 언론인 정치인 등에게 쓰이는 말로 춘추전국시대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 '천자'시대에는  통치 정보를 천자 혼자만 가지고 있었지만, '제후'로 권력이 넘어가면서 학자들이 흩어지게 되었다.

→ 이들이 '재야인'으로 불렸다.

→ 더 이상 천자 밑에 있지 못했기 때문에 배고프고, 자신의 학문을 펼칠 장이 없어져 버렸다.

- '학문은 권력인 시절'에는 권력은 정보의 질과 양에 비례했다.

→ 정치인들이 일반 백성들에게 책을 읽지 못하도록 하였다.

→ 제후들이 '천자'가 되기를 꿈꾸며(권력) 재야인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철학가가 공자이다.)

- 논어나 도덕경 모두 '정치 철학서'이다.

→ 이들의 학문은 철학이 아닌 제후와 관련된 통치술에 관한 책이다.

- 하지만 장자는 예외였다. 장자의 철학은 당시의 '정치 철학'을 벗어난 '무소불규'의 범위를 다루었다.

 

" 결국 장자의 철학은 당대의 철학과는 비교되지 않는 미학적 수준에 까지 이른 학문인 것이다."

 

https://youtu.be/IQ4-dGX1p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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