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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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

notsun 2021. 5. 27. 00:21

전 세계 민족, 종교간 분쟁은
여전히 풀지 못하는 숙제입니다.

특히
중동지역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은
대표적인 역사적 갈등입니다.

특이 이 두 나라는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믿으며,

두 종교간의 갈등이 원인입니다.

출처: 킵바이블

 

 

 

이스라엘


탈무드와 유대교, 중동전쟁의 승리자로
잘 알려진 나라입니다.

30,000㎢ 면적에 인구는 약 900만명 정도인
작은 나라입니다.

수도는 예루살렘으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이 세 종교는 모두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로서 무두 중동에서 생겨난
유일신을 믿는 같은 뿌리를 가진 것들입니다.

인구 구성은 75%가 유대인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아랍니과 기타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백인계 유대인이 상류층을 형성하고
아랍계 유대인이 하류층을 구성하면서
양극화등의 사회적 갈등도 겪고 있습니다.

 

디아스포라


기원전 3천년경부터 많은 사람이 모여살던
문명의 요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일신 하느님으로 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을 선물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팔레스타인에 다시 도착했을 때에는
이곳에 오래전부터 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사람들을 쫒아내고
다시 이곳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왕 시절부터 솔로몬 왕 통치까지
유대인 왕국을 건설하며 성전도 건축했습니다.

짧은 전성기 이후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두 나라로 분리되었고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하고
이 아시리아는 바빌로니아의 지배를
받게되었습니다.

이후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제국에 봉사하다가
동방원정으로 페르시아를 무너뜨린
알렉산더 제국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1세기에는 팔레스타인 지역이
로마제국에 편입되면서 박해를 받게됩니다.

이때부터 유대교 성전은 파괴되고
박해를 받으며 팔레스타인에서 쫒겨나
세계를 유랑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 디아스포라: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지칭한다. <네이버백과사전>

이후 2천년동안 각 세계에서 차별을 받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출처: BIBLIA

 

 

 

이슬람교의 성지 예루살렘


이렇게 유대인이 쫒겨난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슬람의 지배를 받으며
무슬림의 성지가 됩니다.

무함마드가 예루살렘에서 알라의 도움으로
천국을 여행한 후 이슬람교이
성전을 세운 것입니다.

이때부터 메카, 메디나와 함께 예루살렘은
이슬람 3대 성지가 되었으며
지금도 무슬림들은 예루살렘에서
무함마드가 하늘로 승천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기독교
십자군이몰려와 예루살렘을 한 동한 정복했지만

살라딘이 이끄는 이슬람군대가 십자군을 물리치고
이슬람 성지를 회복한 후 약 700년간
예루살렘은 다시 무슬림의 지배를 받습니다.

 

 

 

유대인의 복귀


19세기말 세계에서는 민족주의가 득세하면서
유럽에서는 반유대주의가 유행하고
이것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의 역사가 바뀌어집니다.

반유대주의에 고통받던 유대인들 사이에서
고향으로 돌아가 나라를 세우자는
'시온주의 운동'이 팽배해 지면서
세계 각지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1차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은 영국의 위임통치 지역이 되고
영국의 지원을 받아 유대인들이 대거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의 토착민들과 유대인이
섞여 살게 되면서 많은 내전을 치룹니다.

이후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국가의
도움을 받아 유대인들은 국가를 건설하려는
의지를 드러냅니다.

 

중동전쟁


이런 분쟁이 계속되자 UN은 1947년
팔레스타인을 아랍과 유대국 두개로 분할하는
안을 승인하게 됩니다.

이후 중동은 유대인과 아랍인들과의
중동전쟁이 시작됩니다.

국가 건설 이후 1970년대 까지
무려 4차례에 걸친 전쟁을 치루는데
이것이 바로 중동전쟁입니다.

1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이 건국을 위해
팔레스타인의 아랍 땅을 빼앗는 과정에서 불거졌습니다.

이 전쟁에는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등이
이스라엘의 건국을 막기 위해 참전했지만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60%를 차지합니다.

이렇게 유대인의 힘이 강해지자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이외에도
많은 무장단체를 만들었습니다.

 

 

 

2차 중동전쟁은 1956년에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삼국 동맹으로
수에즈 운하를 되찾기 위해
친소련의 이집트를 기습공격하면서 발생했습니다.

1967년 발생한 3차 중동전쟁은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이 연합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입니다.

하지만 싱겁게도 6일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버렸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공격해 가자지구와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고 시라아의 골란고원 등도 획득합니다.

이 전쟁 후에 이스라엘은 높은 군사적 명성과
중동에서의 확고한 입지를 굳히게 되고
특히 유대지역과 아랍지역 2개로 나뉘었던
예루살렘을 하나로 통일합니다.

하지만 이집트는 복수를 준비하고
시나이반도를 돌려줄 것을 요구하면서
1973년 욤키푸르 전쟁인
제 4차 중동전쟁이 발생합니다.

미국의 무기지원으로 이스라엘은
싸웠지만 고전하자 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대두되게 되고 미국과 소련이 중재에 나서면서
UN의 정전 결의안으로 종전되고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돌려줍니다.

출처: 어린이 동아

 

 

 


이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 평화 모색은
계속되고 있지만 내부 강경파 등의 문제로
갈등은 여전합니다.


세계 최대의 감옥


특히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영토에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는
세계최대의 감옥과도 같은 곳입니다.

이런 작은 가자지구에 공습을 해서
논란이 됐던 적도 있습니다.

명분이야 어떻게든 있지만
특히 이곳의 인구증가율과
어린이 비율이 높은점을 감안해
이슬람인의 인구 비율이 유대인보다 더
높을수 있다는 점을

이스라엘이
두려워서라는 가설도 있으며
이를 '점진적 학살'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참고 자료
https://youtu.be/wZwI0cZ5T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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