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전쟁사_십자군 전쟁-4 <3차 십자군 원정, 사자왕 리처드>

배움의 행복

세계사. 전쟁사_십자군 전쟁-4 <3차 십자군 원정, 사자왕 리처드>

notsun 2020. 5. 9. 07:34

3차 십자군 원정 배경은?

 

예루살렘 함락과 살라딘의 소식은 유럽에 엄청난 충격이었고

당시 교황 그레고리오 8세는 유럽에 대대적 호소를 합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 중이었으나

휴전까지 하고 참전을 결정합니다.

 

성지를 회복하고 성전을 하는 것이 전쟁을

할 수 있었던 명분이 되던 시대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리적 명분이 있었는데

교황은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국왕들도 국가를 세우기 위한 봉견 영주 통합의

목적이 있어서 당시 최강의 독일,영국,프랑스

가 십자군 3차에 참여합니다.

 

사상 최대의 3차 십자군

 

가장 유명한 인물은 리처드 왕은 영토와 사유재산

그리고 통치권까지 매각하면서 원정비용을 마련합니다.

 

1,2차와 달리 통제가 가능한 정규군으로 편성함으로써

조직화된 십자군이 조직됩니다.

 

물론 사자왕 리처드도 왕권 강화의 속내도 있었습니다.

 

 

이에 맞서는 살라딘의 군대는?

 

당시 살라딘은 예루살렘은 함락했지만

아직 십자군 왕국의 요새는 남아있었습니다.

 

이때 살라딘이 약간 이해할 수 없는 전략을 씁니다.

 

 

다른 요새를 공략하기 위해 해안 쪽으로 공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륙으로 이동해서 공격합니다.

 

이에 십자군 패잔병은 해안지역에 모여 방비를 강화하고

3차 원정군이 상륙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합니다.

 

당시 이슬람 세력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전쟁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부러 적이 전쟁 기반을 마련하게

해주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해안 지역의 십자군이 3차 십자군을 위한

준비에 돌입합니다.

 

 

 

 

아크레 전투

 

당시 하틴 전투에서 잡혔던 예루살렘 왕 '기'가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석방되지만

다시 칼끝을 겨눕니다.

 

기는 아크레에 국가를 세울 욕심으로 이 도시를

포위하고 이슬람인들이 격렬한 저항을 합니다.

 

십자군 전쟁 사상 최장의 공방전이었습니다.

 

 

바로 살라딘이 구원 부대를 파병하고 2중 포위하면서

피 말리는 역전의 역전이었습니다.

 

 

<아벤의 제임스>가 맹렬한 반격 하면서 공성전이

시작되고 드디어 3차 십자군 선발대가 도착합니다.

 

열세에 몰린 살라딘은 주변 이슬람 세력을 모으면서

대규모 전투가 아크레로 집중됩니다.

 

하지만 마지막 지원군 필리프 2세와 리처드 1세가

도착하면서 부족한 식량도 철저한 보급로가 마련되고

 십자군의 기세가 오르게 됩니다.

 

십자군은 헬레폴리스를 분해해 가져와서 현장에서

조립하여 공성전에 사용했으나 성내의 이슬람은

'그리스의 불'로 모두 불태웁니다.

 

이에 리처드 왕은 공병대를 투입해 성벽 돌을 빼내기

시작하는 등 공격이 계속되고 2년간 지루한 공성전이

리처드가 온 지 5주 만에 결판이 납니다.

 

아크레 점령은 연속된 살라딘의 연승에 제동을 거는

계기가 되며, 십자군에는 새로운 영웅

리처드 1세가 탄생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후 리처드는 살라딘에 협상을 시도하는데

아랍군 포로 대신 금화 20만 개와 살라딘이 가져간

십자가 반환을 요구합니다.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리처드는 2천7백 명의

포로들을 일괄 처형합니다.

 

십자군의 다음 전투는?

 

아랍인들은 리처드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살라딘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게 됩니다.

 

이전과는 달리 최고의 리더와 체계적인 군대로

진짜 전쟁이 시작됩니다.

 

"내가 여기서 죽으면 누구도 이슬람 군대를

모을 수 없다."라고 살라딘이 말하기까지 합니다.

 

리처드의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보병, 기병, 수송의 삼중

배치로 진격하게 되고 함대가 수송 보급품을 싣고 따라옵니다.

 

사단급의 전략과 전쟁이 없던 중세에서 군단 규모의 전쟁

개념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런 움직임을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던 살라딘이

습격을 하게 되는 이것이 사상 최대의 전투

'아르수프 전투'입니다.

 

공격밖에 몰랐던 십자군이었지만

 

리처드는 선두에 템플 기사단을 후단에는 구호 기사단

을 세워 십자군을 이중 보호하고 중간에

자신의 군대를 배치함으로써

완벽히 통제된 십자군 진영을 갖춥니다.

 

이슬람군의 화살 습격에도 십자군은 전열을 지켜내자

이슬람군은 곤봉을 들고 근접전으로 전투에 나섭니다.

 

 

십자군의 공격권으로 적을 끌어들이는 순간

십자군의 기병이 대열을 유지하며 적을 포위하고

이후 보병이 조직적으로 반격하면서 적을 섬멸합니다.

 

 

 

 

인물탐구 리처드 왕

 

원래 별명은  '라이언 하트'였던 것이

'사자왕'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잔혹함과 자비로움 자만심과 용기를 모두 갖췄다."

라는 평가를 받은 인물입니다.

 

 

또한 지적인 인물로 라틴어로 시까지 쓸 정도였습니다.

 

리처드의 무기는 덴마크식 도끼였다는데

장작 패는 도끼였지만 원심력만 잘 이용하면

최고의 타격 무기였습니다.

 

 

위기상황을 직접 해결하기 위해 몸소 전투에

참여했고 살라딘은 동병상련을 느껴

전투 중인 리처드에게 말을 보내 타고 타고 싸우게

하는 일화도 있었습니다.

<물론 음로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3차 십자군의 결말은?

 

예루살렘 탈환에도 회의적이었습니다.

비록 탈환을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살라딘에 의해

아랍세계가 통합이 되었기 때문에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 다시 유럽으로 돌아갑니다.

 

또한 3차 원정을 위해 준비했던 자금도 고갈이

되었던 이유도 컸기 때문에

예루살렘 왕국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예루살렘 통행권을 획득하는 것으로 협정을

맺고 마무리됩니다.

 

이때부터 살라딘이 건설한 이집트의 이슬람 조

'아이유브 왕조'가 시작되지만 살라딘

사망 이후 곧 멸망합니다.

 

고국으로 돌아간 리처드의 운명은?

 

리처드가 귀환 중 독일 왕의 포로가 되자

대신 영국을 통치하던 동생이 석방이 아닌

포로로 잡아달라는 뇌물을(정권 유지 위해)

마련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세금 부담을 지우게 되는데

이게 바로 소설 '로빈훗'의 배경입니다.

 

이런 동생과는 달리 정치꾼은 아니었고

이런 배신의 아이콘 동생을 두 번이나 용서하기 때문에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입니다.

 

노르망디는 프랑스에 빼앗기고 리처드는 전사합니다.

 

가장 추악했던 4차 십자군

 

이때부터 성지 탈환은 없어지고

원정 목표가 이집트로 바뀝니다.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이집트를 정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집트를 공격하지만 계속 실패하게 되고

교황청도 '왕이 이끄는 십자군이 필요하다'

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리처드의 사례로

어느 왕도 참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결국 기사단이 지휘하면서 4차 십자군도 돌아가게 되고

이후 프랑스 왕이 원정을 가기도 하지만

결국 유럽 연합군이 가야 해결이 되는 싸움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의 의미는?

 

현대와 중세와 종교의 의미가 다름

중세인의 눈으로 봐야지

우리의 개념으로 종교전쟁이다고

단언하지 말아야 한다.

 

"시대에 따라 전쟁의 의미는 다르다."

 

유럽 이슬람 모두 정치와 통치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이 십자군 전쟁을 통해 이탈리아가

부흥하게 되고 결국 르네상스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돈이 있는 곳에 전쟁이 있다."

이권을 찾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명분을 찾기

쉬운데 바로 그런 예가 십자군 전쟁이다.

 

이상의 내용은 아래 영상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www.youtu.be/_m3Iva3zX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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