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전쟁사_십자군 전쟁-3 <살라딘 등장>

배움의 행복

세계사. 전쟁사_십자군 전쟁-3 <살라딘 등장>

notsun 2020. 5. 5. 20:38

성지를 두고 200여 년간 지속된

전쟁 그 세번째 이야기입니다.

 

에데사 전투를 통해

2차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는 시기부터

시작됩니다.

 

에데사 함락의 의미는?

 

에데사는 요새 중의 요새로서

주요 거점이 함락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신의주가 함락된 꼴로서

최전방이 뚫렸기 때문에 십자군 왕국은

바짝 긴장하게 됩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유럽은 2차 십자군을

모집했는데, 당시 십자군 왕국은

병력이 적어 수성(守城)의 역할만 겨우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2차 십자군 원정

2차 원정에도 대단한 인물들이 참전합니다.

루이 7세인 왕도 참전하게 되고

그의 왕비이자 갑부인 엘레오노르도 동행합니다.

 

 

하지만 이 원정이 출발부터 삐걱거립니다.

한 겨울 터키를 통과하는 루트를 선택하면서

식량을 이동 중 모두 소진합니다.

 

규모는 컸지만 엉성하게 끝나는 원정이 됩니다.

독일은 전투에서 패배하고

프랑스는 루이 7세와 왕비가 갈등을 겪고

결국 이혼하고 회군해 버립니다.

 

윌리엄의 사위도 1차에 이어 2차 십자군 원정도

참여하지만 다시 회군합니다.

 

다마스쿠스까지 공략을 시도하지만

결국 포기하고, 투르크 지역을 통과하면서

도적떼에 털리기도 합니다.

 

결국 허무하게 2차 십자군 원정은

실패로 끝이 납니다.

 

하지만 두 가지 큰 의미가 있는 것이

1> 체계적인 3차 십자군 원정을 준비하게 되고

2>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구조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분란 잦은 시아파의 이집트를

노립니다.)

 

 

1168년 십자군이 카이로 인근에서

시아파를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수니파와 시아파가 통합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살라딘의 역할이 컸습니다.

 

결국 2차 십자군원정은 아랍을 통합하는

계기가 됩니다.

 

 

 

 

보두앵 4세 VS 살라딘

 

자신감을 갖은 이슬람은 그들의 성전이기도 한

예루살렘을 수복하기 위해 전투를 벌입니다.

 

바로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배경이 되는

시기였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보두앵 4세는 온전치 못한 몸으로

전장에서 살라딘과 맞붙습니다.

 

정치력, 전략적 판단, 안목 또한 대단했으며

몸을 사리지 않았습니다.

 

더 오랫동안 리더 역할을 했다면

십자군 원정의 스토리가 바뀌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보두앵 4세 아버지가 이집트에 매력을 느껴 침략하고

이집트 시아파 왕조가 살라딘에게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살라딘은 이집트에 사령관으로 파견을 갔다가

왕으로 추대되고 십자군을 공격하게 됩니다.

 

왕이 되어서도 자기 세력이 없던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출신 살라딘은 거룩한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앞장서서 분열된 이슬람 세력을

 십자군을 몰아내기 위해 단합시킵니다.

 

물론 전 십자군과 이슬람의 싸움은 아니고

요새 하나를 두고 보두앵 4세와 살라딘이

맞붙은 수준이었습니다.

 

병력이 부족한 십자군은 공격보다는 수성에

치중하고 살라딘을 지치게 합니다.

 

이슬람 지방 세력에 도움을 요청해도 답이 없어

당시 수세에 몰린 살라딘이었지만

1185년 보두앵 4세가 병으로 죽게 되면서

기사회생합니다.

 

보두앵 4세 사후의 상황은?

 

보두앵 4세가 죽고

그의 동생 에바그린 시빌라 공주가 왕이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남편 '기 드 뤼지냥'에게

왕권을 넘겨버립니다. 기는 허세와 호기가 가득한

인물로 전쟁에서도 계속 패배한 인물입니다.

 

'기'가 왕이 된 후 십자군 왕국의 백작들도

그를 따라 봉기하게 되고 십자군 역사상

최대의 병력(2만 5천 명)이 동원됩니다.

 

여기서 살라딘도 비슷한 규모로 기다렸다는 듯 맞붙게

되는데 그게 바로 유명한 '하틴의 뿔' 전투입니다.

 

 

'기'는 대규모 전투 경험이 없었고

물이 없는 곳에 숙영지를 조성한 실수를 합니다.

 

이에 살라딘은 밤새 괴롭히는 전략으로 써서 결국 십자군의

물 부족과 체력 고갈이 심각해서

이 전투에서 영화처럼 십자군은 전멸합니다.

 

이 전투는 십자군에게 이슬람의 위력을 과시한

첫 번째 전투라는 점과 살라딘이 이슬람의  영웅으로

부각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이때부터 주변 이슬람 영주들이 살라딘에게

협조하기 시작하고 대세가 됩니다.

 

예루살렘의 운명은?

 

예루살렘은 중동 최고의 요새 도시 중 하나였지만

살아 돌아온 기사가 단 2명뿐이었습니다.

 

당시 포로가 된 발리안은 살라딘을

설득해 예루살렘 가족을 위해 들어가지만

예루살렘의 주교의 회유

(당시 전쟁 리더가 필요했기 때문)에

결국 살라딘에게

약속을 못 지킨다는 사과의 편지를 보냅니다.

 

대신 살라딘은 발리안의 가족을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발리안은 예루살렘 시민 중 기사 30명을 임명하고

6만의 병력을 만듭니다.

 

이에 예루살렘 함락을 위해 만만의 준비를 하고

도착한 살라딘의 공격으로 성벽 한쪽이

(헤롯의 문)무너지고

이슬람군이 쳐들어 옵니다.

 

헤롯의문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여기서 십자군은 결사항전을 하지만

결국 살라딘에게 협상을 요청합니다.

 

거의 전멸 직전의 발리안의 협상카드는

예루살렘 내의 이슬람인도 죽이고

우리도 죽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슬람의 통합 군주를 꿈꾼 살라딘이기 때문에

자비롭고 위대한 군주가 되기를 선택합니다.

 

발리안의 전략은

"내가 가진 게 없어도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하라"였습니다.

 

만약 살라딘이 발리안의 협상을 거절했다면

예루살렘은 얻었지만 전 이슬람 통합에 실패하고

또 유럽의 재 공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자기 세력 확보를 위해

절대적 권위와 명성이 절실했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한 것입니다.

 

살라딘은 포로와 십자군의 장례까지도 치러주고

호위까지 해 주며 기독교인과 그의 가족을

약속대로 피난하도록 돕습니다.

 

살라딘이 아랍세계뿐만 아니라 기독교 세계까지

존경받는 이유는 예루살렘 수복 이후에도

기독교인들의 출입을 허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포용정책으로 예루살렘은 더욱 번성합니다.

 

 

 

 

살라딘 그는 누구인가?

 

죽일 사람과 살릴 사람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령관으로 이집트에 파견 당시

시아파 지도자들부터 암살합니다.

 

다른 영주들을 지배하려면

1> 리더로서의 포용력과

2>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

이 두 가지가 필요한데

살라딘이 이를 잘 이용합니다.

 

처음에는 사령관이 아니었지만 살라딘이

사령관이 되자 자국('누르 앗딘')에서는 초조 불안해져서

누르 앗딘 아들이 살라딘 암살자를 보냅니다.

 

여기서 구사일생으로 살면서 세력을 키우기

시작합니다.

 

살라딘을 향한 기독교인들의 평가는 컸습니다.

 

 

기독교인에는 거대한 적수였으며

오히려 이성적인 인물이라 더 화가 났습니다.

 

반면 유럽인들이 보더라도 살라딘은

미래의 군주상을 제시했기 때문에 유럽인도

존경하기도 했습니다.

 

단테가 신곡에도

살라딘이 등장합니다.

 

지옥에 보내기 아쉬운 사람들을 위한

특별거주구역을 만드는데 소크라테스 등과

함께 유일한 이슬람인으로

살라딘이 포함될 정도였습니다.

 

 

예루살렘도 정복되고

적의 리더도 대단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유럽은 다시 한번 동요합니다.

 

이에 3차 십자군 전쟁이 시작됩니다.

 

아래 포스팅을 방문해주세요

www.notsunmoon.tistory.com/216

 

 

위의 내용은 아래 영상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https://youtu.be/q87foFLmrcw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