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를 향한 집념 페라리 1

배움의 행복

스피드를 향한 집념 페라리 1

notsun 2020. 5. 4. 22:15

페라리에 관한 첫번 째 이야기입니다.

 

20세기를 코 앞에 두고 자동차가 발명되고

유럽과 미국에서는 자동차 경주 열풍이

일게 됩니다.

 

 

이런 시대에 엔조 페라리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1898년 태어났습니다.

 

엔조의 아버지는 철공소를 운영했으며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형과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가업을 이어주길 바랬지만

어린 엔조는 그럴 생각이 없었고

기자나 오페라 가수를 꿈꾸었습니다.

 

엔조가 10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아들들을

데리고 자동차 경주장에 갔습니다.

 

그는 1907년 그랑프리 우승자를 보고

사나이다움의 극치를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뜻(가업 전수)에 따라 두 아들을

기계공업 학교에 진학시켰지만

그는 낙제를 합니다.

 

엔조가 16세가 된 1914년 여름

이탈리아는 1차 세계대전을 치룹니다.

 

 

아버지의 갑자스런 죽음으로 철공소가

폐업하고

형은 구급차 운전병으로 복무 중 사망합니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1917년 그도 입대를 합니다.

 

자동차관련 일을 하고 싶었지만 군에서는

말발굽 가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군에서 늑막염에 걸려 후방병원으로 후송된 후

다행히도 완치되어 제대합니다.

 

이탈리아는 패전국이 되면서 더욱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 무솔리니와 파시스트가 정권을 잡고

있던 당시 정치에는 관심없이

그의 관심은 오직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군 복무 당시 연대장의 추천장을 들고 자동차

중심지 '토리노'로 가게 됩니다.

 

 

피아트사에 지원했지만 직장을 얻지 못하고

자기를 채용하지 않은 피아트에

분도와 수치심을 느꼈고

피아트에 복수를 하겠다는 결심합니다.

 

이후 페라리는 경주용 자동차 선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죽음의 질병도 이겨냈고 스타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경주용 자동차는 일반 자동차를 개조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전쟁 때 사용된 비행기, 탱크 등의 신기술이

경주용 자동차에도 적용되면서

토리노는 자동차산업의 중심지로 각광받습니다.

 

 

그는 거기서 엔지니어 후고 세바치를 만나게 되고

작은 자동차 공장에 취직하게 됩니다.

 

그는 거기서 중고 첫차 '알파 로메오'를 사서

경주에 참가하고 이후 두각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생계유지가 필요했던 페라리는

세일즈맨이 되기도 합니다.

 

이 무렵 아내 로라를 만났고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은 골치 아픈 일이 많았습니다.

 

 

이를 잊기 위해 일에 몰두합니다.

 

 

2부에서 이어서 포스팅 하겠습니다.~

 

 

위의 내용은 아래 영상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https://youtu.be/ovkXI4l68w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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