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번호 : 사적 제257호
- 조선 26대 임금 고종이 등극하기 전에 살았던 잠저*로서, 생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집
- 흥선대원군은 이곳을 무대로 10여 년간 집정하면서 어린 아들을 대신해 정치함
- 서운관이 있던 고개에서 유래된 지명을 따서 운현궁이라 부름.
- 1864년(고종1년)에 노락당과 노안당을 짓고, 1869년 이로당과 영로당(서울 민속자료 제19호)를 세움
- 창덕궁을 쉽게 드나들도록 고종 전용 경근문과 흥선대원군을 위한 공근문을 두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음.
- 1912년 양관을 세워 손님을 맞는 곳으로 사용.
- 노안당은 흥선대원군이 국정을 논의하던 곳이며, 노락당은 안채, 이로당은 별당으로 사용
- 규모나 격식, 평면 모양으로 볼 때, 사대부집이라기보다는 궁궐 대전에 가까움.
- 흥선대원군이 세상을 떠난 후 큰 아들인 이재면을 거쳐 손자 이준용에게 상속.
- 한국전쟁 이후 상당 부분이 팔리면서 집의 규모가 크게 줌.
*잠저:예전에,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임금이나 종실에서 들어온 임금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사는 집이나 그 시기를 이르던 말<출처:다음 국어사전>
This is the house in which King Gojong, 26th king of Joseon, lived before he acceded to the throne. It was owned by Heungseon Daewongun Yi Haeung, the father of Gojong. While staying at this house, Heungseon Daewongun ruled over the country for about 10 years, after taking control of state affairs in place of his son. Unhyeongung was so named after a pass where Seoungwan was situated. In 1864, Norakdang and Noandang were built, and in 1869, Irodang and Yeongnodang were erected. To facilitate going in and out of Changdeokgung Palace, Gyeonggeunmun and Gonggeunmun were built exclusively for Gojong and Heungseon Daewongun, respectively. But they do not remain today, In 1912, Yangwan was built to greet guests. Noandang was where Heungseon Daewongun discussed state affairs. Norakdang and Irodang were used as the anchae(inner quarters) and the byeoichae(outbuilding), respectively. Considering the size, formality and ground plan, Unhyeongung is similar to an inner palace rather than the house of a high ranking official. Following the death of Heungseon Daewongun, the house was inherited by his eldest son Yi Jaemyeon and then his grandson Yi Junyong after. Following the Korean War, however, a considerable part of the house was sold, and therefore the size of the house was considerably reduced.
운현궁을 돌아보기에 앞서 '흥선대원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제1대 황제인 '고종'의 아버지
-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은 정조의 이복동생 '은산군'의 양자로 흥선대원군과 철종은 같은 항렬이 됨.
- 철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왕족의 혈통을 잇게 됨.
- 고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12세) 고종의 양어머니 신정왕후의 수렴청정(1년)이후, 10년 동안 십정을 함.
- 안으로 왕권강화, 밖으로 통상수교 거부 정책을 단행
- '안동 김씨' 위주의 정치구조를 흔들고, 국가 재정의 부족을 충당하기 위해 양반들에게 세금을 징수하는 '호포제' 실시
- 붕당정치 대립의 근거지이며, 운영 경비가 많이 들던 전국의 서원을 혁파하고 47개만 남김
-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을 중건
- 유통되던 '상평통보'보다 100배의 가치가 있는 '당백전'을 발행: 인플레이션 발생, 백성 반발
- 서양의 무역거래 거부로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를 치름
- 척화비('오랑캐와 교류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행위'라고 새김)를 전국에 세움
현재 남아있는 '운현궁'의 배치도 이며 1번 출입구쪽이 도로변이 되겠습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도보로 2~3분 정도의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합니다.
현대의 도시에 면해 있는 담장의 모습은 그렇게 어색하지 않는 것이 바로 '강북의 멋'이겠지요
관람시간은 하절기, 동절기가 다르며, 무엇보다 '무료입장'이어서 주변 직장인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습니다.
매월 다양한 행사를 개최함으로서 '도심 내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수직사 Sujiksa
- 지정번호: 사적 제257호
- 정문 오른쪽에 위치하며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하던 관리들이 거쳐하던 곳
- 당시 운형궁의 규모가 상당히 컸으며, 고종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흥선대원궁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여, 궁에서 파견된 인원이 많았기 때문에 수직사의 규모도 상당히 큰 편임.
Sujiksa, located on the right of the main gate, was a residential building for those who worked as maintenance and guards of Unhyeongung Palace. At the time, the Palace was fairly large and regent Heungseon wielded great power as his son King Gojong inaugurated, thus there was a large number of dispatched guards and workers.
노안당
지정번호: 사적 제 257호
- 운현궁의 사랑채로 흥선대원군의 주된 거처.
- '노안'은 <논어> 가운데 '노자(老者)를 안지(安之)하며_노인을 공경하며 편안하게 한다' 라는 구절에서 따왔음.
- '노안당'은 '노락당'과 함께 1864년(고종1)3월 상량하고, 같은 해 완공.
- 평면은 'T'자형으로 온돌방과 마루로 실내 구성하고, 누마루인 영화루를 달아냄.
- 규모는 정면 6칸, 측면 3칸
- 굴도리를 쓴 민도리집: 기둥머리에서 보와 도리가 직교하면서 짜이는 구조로 단면 모양에 따라 원형은 굴도리, 방형은 납도리인 구조
- 공간구성과 견실한 목조구조, 세부기법은 궁궐에 버금가는 품격을 보여 줌
Noandang Hall is the sarangchae(man'r quarter) of Unhyeongung Palace, which is the main residence of Regent Heungseon.
The word Noan stems from the Analects of Confucius about paying respect to the elderly and helping them feel confortable. Noandang Hall was built in 1864(the 1st year of Emperor Gojong's reign).
Its overall spatial layout, solid wooden structures, triple-fold windows, sunscreen eaves, and other features show that it was built like the Royal Palace.
노락당
- 지정번호: 사적 제257호
- 운현궁의 안채로서 노안당과 같은 해인 1864년(고종1년)에 지어짐.
- 정면 10칸, 측면 3칸으로 평면은 'ㅡ'자형
-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온돌방, 앞뒤로는 툇간을 둔 궁궐 내전 평면구성
- 독특하게 복도각을 통해 이로당까지 이어지게 한 방식
- 운현궁 안에서 유일하게 기둥머리에 익공(새 날개 모양으로 뾰족하게 생긴 공포)을 장식하여 가장 높은 위계 표현
- 여러 세부기법은 조선 말기 궁궐건축에 버금가는 수준
- 1866(고종3) 고종과 명성황후는 노락당에서 가례를 올림.
Norakdang Hall is the central place of Unhyeongung Palace. It was built in 1864(the 1st year of Emperor Gojong's reign). Norakdang Hall is the only building in the house that has decorated colomn tops, which indicate that Emperor Gojong and his wife, Empress Myeongseong, held their wedding ceremony in 1866
이로당
지정번호: 사적 제257호
- 노락당과 함께 운현궁의 안채로 쓰였던 건물
- '이로(二老)는 흥선대원군과 부대부인 여흥 민씨를 의미하는 말로 해석
- 앞쪽에 자리한 노안당과 노락당보다 뒤늦은 1869년(고종6년) 건축
- 정면 7칸, 측면 7칸 규모로 평면은 'ㅁ'자형 구조
- 실내는 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
- 굴도리를 쓴 민도리집으로 사면의 가구구조에 차이를 두어 공간의 위계를 만듬
- 궁궐과 흡사한 평면구성과 창호, 차양 같은 세부 기법은 노락당, 노안당과 같은 수준
- 이로당 뒤편의 '운나동 김승현 가옥(민속문화재 제19호)'은 원래 운현궁에 속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영로당'이라 부름
우리나라 근대사로 넘어가는 과정의 격변기와 관련된 인물들의 공간이어서 조금은 우울하고 어두운 느낌을 가지고 건물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 나름대로 그 시대를 버티기 위한 '안간힘'이 느껴졌던 답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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