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 의식적이든 아니든 우리는 사랑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사랑이 보잘것 없다는 점도
다소 담담하게 인정하고 있었다.
그 불행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괴로워하고,
우리 스스로 고통에 동의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고
사태를 은폐하기 위해 그 질병이 사용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사실 그는 오랜 시간을 두고 마음속으로
곱씹으며 괴로워하던 끝에 심정을 표현했고,
그가 전달하고자 한 이미지는 기대와
열정의 불 속에서 오랫동안 익혀 온 것인데,
상대방은 그 것을 시장에 가면 살 수 있는
싸구려 괴로움이나 연속극에서 볼 수 있는
우울증 같은 상투적인 가정일 거라고 생각했다.
불행에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추상이 우리를 죽이기 시작할
때는 추상에 신경을 써야 한다.
페스트는 마치 추상처럼 단조로웠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리유 자신이었다.
랑베르에게 추상이란 자기의 행복을
가로막는 모든 것이었다.
개인의 행복과 페스트라는 추상적 관념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를테면 우울한 투쟁과도
같은 것을 새로운 차원에서 계속
추적할 수 있었다.
세계의 질서가
죽음에 의해 규정되는
이상, 신이 침묵하고 있는 하늘을 바라볼
일이 아니라, 신을 믿지않고 온 힘을 다해
죽음과 싸우는 일이 어쩌면 신에게도
더 좋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은 영웅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건 성실성의 문제에요.
비웃을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중략>
성실성은 내 직분을 완수하는 겁니다.
습관이 되어 버린 절망은
절망 자체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더 이상 '여러분'
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들'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행복'이란 투쟁을 위해 묶어 놓았던
힘의 다발을 감정을 토로하며
풀어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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