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는 끝까지
'근원'이 무엇이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기서 저기로 '건너가는 것' 자체가
최고의 지혜이지
건너가서 그곳에 어떤 지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본질을 긍정하는 한
근원을 추구하고 목적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목적(목표)은 이상이 되고 기준이 된다.
기준이 되면 모든 상황을 목적을 근거로
해석하게 된다.
기준이 있으면 구분이 따르고,
이후 배제하면 억압이 된다.
이것이 폭력을 낳는 하나의
노선이다.
어떤 철학이 근원을 가지면
그 철학은 목적론으로 빠질 수 밖에 없다.
목적을 갖지 않으면 어떻게
인간이 발전할 수 있느냐?
자식을 교육할 때에도
무엇이 되라기 보다는
어떻게 살라고 가르치는 방법도 있다.
이는 훨씬 개방적이고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
우리는 왜 목적을 지양하지 못하고
목표에 갇히는가?
그 이유는 세계를 보는 눈이
매우 짧기 때문이다.
어떤 직업을 갖는데 성공한 인간과
덕목을 가진 인간은
어떻게 삶이 다를까?
훌륭한 사람을 보는 것은
그 사람을 찬양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그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다.
목표에 갇혀 있다면 행복하지 않고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대신 목적을 갖는 것이 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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