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감정은 입체영상으로
굳어진 화학물질이다.
어른이 되면 대부분은
신호가 고장나
감정적으로 동떨어진 곳에서
문제들을 다룬다.
혹은 오늘 일을
어제와 똑같이 다루기도 한다.
앞선 현실을 경험해 오면서
전체를 통합해서 다루어지는 걸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세포는 몸에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가장 작은 단위다.
우리 몸의 세포들이 생화학적으로
욕망을 채우는 쪽으로
스스로를 몰고 간다.
화학적인 요구와 일치하는 상황을
창조해 내면서 말이다.
따라서 중독은 화학적으로
찾고 있는 고지로 돌진하기 위해
항상 더 이상을 필요로 한다.
특정사람과 사랑에 빠진 사람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그들은 이미 중독된 감정 안에서
그들이 예상했던 사랑에 빠진 것이다.
우리는 감정이고 감정이 우리이다.
감정들을 구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세포들은 모두 감정의 통제를 받는다.
감정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감정은 삶 그 자체이다.
감정은 우리의 경험을
풍부하게 색칠해준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감정에 중독되는 것이다.
헤로인에 중독될 수 있다는 것은
신경망의 물질이나 어떤 감정에도
중독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 감정상태를 찾기 위해
관련된 탐색명령이 계속된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몸을 창조한다.
만일 어떤 약이나 내부의 분비액이
오랜 기간 강렬하게 자극받아 나오게 되면
둔감해지거나 통제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세포를 매일 일정하게 반복해서
동일한 태도나 화학물질로 충격을 주게 되면
분열하는 세포들과 더 젊은 세포들은
이런 감정에 맞는 신경물질을 더 만들어 내게되고
비타민이나 미네랄, 그리고 분비액의
교환을 위한 수용체는 줄어들게 된다.
심지어 독성이 있는 물질까지도
모든 노화는 단백질의 부적당한
생산 때문에 일어난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먹는
음식물이 중요한가 이다.
세포가 그 영양분을 흡수하거나
받아들일 수용체를 갖추고 있지 않다면
그러한 영양분이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일 생각이 물에 이런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생각이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해 봐라
어느 누구도 당신의 아름다운 본성과
내면에서 외부로 향하는 충만한 지혜에 대해
다 알지 못한다.
왜 우리는 중독되는 것일까?
더 나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더 나은 꿈을 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지루하거나
영적으로 감흥이 없는 삶을 사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들을 가슴 뛰게 하는
지식이나 정보를 얻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허망한 것들에 굴복해서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고
그들의 영혼이나 욕망이 표면으로
결코 떠오르지 못하는 삶을 산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으로
신경망의 도약을 위한 개념들과의
교류의 날갯짓을 시작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들의 세상과
삶을 지배해오던 오래된 개념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다.
그런 변화들은 내면에서 밖으로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내가 마음을 바꾸면
나의 선택들도 바뀔까?
왜 나는 바뀌지 않는 걸까?
내가 집착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집착하는 사람이나 장소,
사물, 시간, 사건들은
내가 그것으로부터 물러서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거기서 부터 인간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신이다.
나 자신이 위대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나의 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 하는 것이다.
만약 의식적으로 나의 운명을 계획한다면
그리고 정신적인 관점에서 의식저으로
나의 현실과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성찰한다면
결국, 그러한 현실이 나의 삶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하루를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의 하루를 창조하고
근본적인 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리고 그 관찰자가 항상
모든 행동을 바라보고
스스로에게 그러한 정신적인
방향이 존재한다면
내가 창조하는 이런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신호를 보여 줄 것이고
내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일이 전개되고
또 그러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안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도 없게 될 것이다.
뇌는 무한한 것을 수용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이고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놀라운 것들을 우리 안에
가지고 있다는 것과
배우고 실제로 변화시키고 적용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알 필요가 있다.
아마도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하거나
세상을 더 깊게 이해하거나 사람들과
사물들의 관계를 더 깊게 이해하는
방법이 될 수 도 있다.
우리의 뇌 안에 영적인 부분을 찾는 것은
우리 모두가 접근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체화하고
그것에 완전히 집중하고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우리의 의식을 완전히 집중하게 되면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시간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자기라고 동일시 했던 모습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것이다.
스스로를 벗어나고
시간을 벗어나는 그 순간이
진실로 실재라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결심을 하고 어떤 것을 하고자 할 때
모든 사람들은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살아있는 양자 물리학이며
분명한 현실이고 진실된
관찰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의신은 주위의 사람들과
물질적인 특성들, 그리고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당신이 창조하는 이러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창조가 이어지고
이러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안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없게 될 것이다.
완전한 관찰자의 눈으로
여러분을 바라본 적이 있나요?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더 크다.
나는 주위 환경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우주 자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나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것들은 하나의 일부이고
나는 그것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우주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단계에서
우리의 신성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는 목적은
자유의지의 선물을 펼쳐내고
실질적인 창조자가 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창조주가 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이상과 생각들을
우주에 스며들게 하고
그러한 삶을 이루기 위해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나를 인정하고 우리가
그러한 선택권을 가진 자리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마음의 존재를 인정할 때
관점의 전환이 일어난다.
그때 깨달음이 일어난다.
양자물리학은
가능성에 관한 물리학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가지고 선택을 함으로써
실질적인 경험이 일어나게 된다.
의식이 모든 존재의 근원이다.
우린 집착을 떠나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한 지식이 현실로 나타나고
우리의 몸에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마음의 변화와 홀로그램으로
그리고 흐트러진 꿈들을 넘어
전혀 다른 생각들로 그 현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비활성 물질을 움직이게 하고
혼돈 속으로 끌어들이는
만질 수 없는 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것이 형태를 갖추면
우리는 그것을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삶의 어떤 시점에서 무엇인가각
변화했다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만일 변화했다면 비로소 우리의 존재의
이유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다.
'건축 관련 정보 >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피스텔 건축기준 변경_23년 12월 13일 (0) | 2023.12.24 |
---|---|
보일러 연도를 창문 등 개구부에서 60cm 이격 설치 관련 규정 (0) | 2023.11.12 |
What The Bleep Do We Know part1. (1) | 2023.10.09 |
차량 제원과 회전반경 관련 법령 (2) | 2023.09.27 |
노후 건물을 증축 리모델링을 하는 이유 (1) | 2023.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