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의 발명은 전쟁의 양상을 바꿔놓았습니다.
화살과 돌에서
조총과 대포의 대결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성곽의 모습도 바뀌어야 했습니다.
대포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성곽의 첫번째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에 맞추어
조선의 마지막 성곽인 수원화성은 18세기
화포에 대비한 최첨단의 요새였습니다.
조선의 계몽군주라 불리우던 '정조'때
만들어진 것으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기면서 그 인근에 신도시를
만들고 성곽을 축조한 것이 바로 '수원화성'입니다.
수원화성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하였기 때문에
성곽이 도심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화성4대문 중 하나인 팔달문의 좌우로 도로가
생겨난 것 등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제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낙남헌(행궁)
임금이 행차했을 때 머물던 궁
성곽에 지어진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물
#용연 과 #방화수류정
#화홍문
성벽
자연스러우면서도 견고한 성벽은
수원화성의 자랑거리입니다.
화성이 완성된 시기는 1796년으로
공사기간은 약 2년 6개월이 소요되었습니다.
#화성성역의괘
화성이 만들어진 뒤 작성된 것으로 일종의 공사보고서로서
공사주체와 자재 등 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복원이 가능하도록 설계도가 담겨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에 있어서도 이 의궤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화성전도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인 '화성'은
정조시대 안정된 정치와 문화가 발달되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유네스코 등재
지금의 화성은 정조 때 지어진 것은 아니고
상당부분이 1970년대 복원된 것이라고 합니다.
복원된 문화재이지만
유네스코가 세계유산 선정 이유는
1. 고도로 발달된 과학적 특징을 갖춘
근대 초기 군사 건축물
2. 18세디 유럽과 극동아시아의
성제의 특징을 통합
화포에 대응하기 위한 성벽의 변화
보통 성벽의 높이는 4~5m 정도여서
적군이 쉽게 오를 수 있는 높이입니다.
삼국시대 만들어진 '삼년산성'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높이입니다.
과거의 전쟁에서는 성곽의 높이가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난 화포의 등장은 이 판세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화포의 공격으로 오히려 높은 성곽에서 방어가
더 힘들어졌습니다.
하단부를 공격할 경우 전체가 무너져 내릴
위험이 더 커진 것입니다.
유럽의 성곽역시 기존의 높은 성벽과 첨탑은
사라지고 대신 더 낮아지고 두터워진 형태로
변했습니다.
또한 성벽을 구성하는 석재의 크기로
가로와 세로가 40cm 이상의 큰 사이즈로
(남한산성: 30cm 정도 수준)
화포의 공격에도 다른 석재들이
같이 파괴되지 않도록 하고자 하였고
성돌의 길이도 70~80cm 로
(일반 성벽의 3배)
돌이 쉽게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였고
중간 중간 심석(90~150cm)도
쌓아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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